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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눈물의 오디션[이재국의 우당탕탕]〈62〉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입력 2022-01-07 03:00업데이트 2022-01-07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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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눈물이 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얼마 전 함께 연극하던 선후배들을 만난 자리에서 ‘스트리트댄스 우먼 파이터’ 이야기가 나왔다. “난 옛날 생각 나서 볼 때마다 울어.” “나는 ‘싱어게인’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중년이 된 우리가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건 연극하던 시절 수없이 오디션을 봤고, 수없이 떨어진 경험 때문이었다. 연극은 너무 재밌었지만 보수가 너무 적었다. 그래서 선배들 몰래 영화, 드라마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내게 첫 오디션은 ‘실제상황’이라는 영화였다. 거의 실시간 진행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무대 경험이 많은 연극배우들을 많이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오디션을 보러 갔다. 선배들에게 영화 오디션 보러 간다고 하면 혼날까 봐 병원 간다고 거짓말도 했다.

오디션 현장에는 정말 많은 배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대학교 동기도 있었고, 극단 선배도 있었다. 선배는 나를 째려봤고, 나중에 혼날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텅 빈 무대처럼 고요해졌다. 1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됐지만 너무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선배의 눈빛에 주눅이 들어서 그랬는지 대사도 버벅거렸고 몸짓도 어색했다.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어디를 보고 연기를 해야 할지 몰라 어리바리했고, 1차에서 바로 탈락했다. 선배는 그날 저녁 술을 한잔 사주셨다. “오디션 자주 봤니?” “처음 봤습니다.” “이왕 할 거면 잘해. 떨어지면 속상하잖아.” 혼날 줄 알았는데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다.

내 두 번째 오디션은 비운의 권투선수 김득구의 생애를 다룬 ‘챔피언’이라는 영화였다. 복싱 영화다 보니 오디션 현장에는 실제 권투 글러브를 끼고 연습하는 배우들부터 마우스피스를 끼고 줄넘기를 하는 배우들까지 있었다. 2시간을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왔고 처음 오디션보다는 자연스러웠는지 1차 오디션은 통과를 했지만 2차에서 바로 탈락했다. 그 후에도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대부분 1차에서 탈락했고, 배우에 재능이 없다고 느낀 나는 작가의 길로 진로를 변경했다.

최근 끝난 ‘스트리트댄스 걸스 파이터’에 출연한 댄서가 이런 말을 했다. “일주일 동안 밥 먹고 춤추고 자고, 밥 먹고 춤추고 자고, 이렇게 지냈습니다.” 나도 ‘연습하고 공연하고 자고, 연습하고 공연하고 자고’ 이런 시절을 보내본 사람으로서 남들 앞에서 내 실력을 평가받고 순위가 매겨지고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셔야 하는 댄서들에게 과몰입해서 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갱년기 때문에 눈물이 많아진 거라고 오해했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슬픈 영화를 본다고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정확히 오디션을 볼 때만 눈물이 나기 때문이다. 내가 오디션을 보러 다닐 때는 오디션이 참 잔인하다고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고맙게 느껴진다. 결과를 떠나 오디션을 보기 위해 노력했던 나의 시간과 에너지, 그게 나를 성장시켰고 그게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줬다. 오디션에 아무나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준 심사위원의 시간마저도 감사한 거니까. ‘오디션’이여 와라.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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