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낡은 책에서 발견한 미래[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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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보고 싶은 책을 찾아보니 이미 오래전에 절판되어 중고 서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없으면 더 갈증이 생긴다. 여기저기 알아보다 다행히 학교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겨울 햇살이 쨍하고 마음 가벼운 어느 날 언덕길을 올라 도서관에 갔다. 노트북을 펴고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 전공 서적을 보고 있는 학생, 햇볕이 드는 창가에서 소설책을 읽는 학생들을 보니 기분이 더 밝아졌다.

도서관은 책 읽고 공부하는 현실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공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서가에 꽂힌 오래된 책이 나처럼 불쑥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다. 도서관에서 찾은 책을 펼쳐서 겨울 햇살이 비치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책은 1863년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이 쓴 ‘20세기 파리’였다. 이 책은 130년 동안 쥘 베른의 서랍 속에 숨어 있다가 그의 증손자에게 발견됐고, 1994년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산업혁명 시대였음에도 책 속에서는 유리로 된 고층빌딩, 엘리베이터, 소음 없고 자동화된 고속열차, 모터, 내연기관 자동차, 계산기, 번잡한 지하철이 등장한다. 지금의 인터넷과 유사한 통신망을 이용한 전자 음악회도 열린다. 파리에서 열린 연주회에선 200개의 피아노가 한 피아니스트의 손아래에서 동시에 연주되기도 하고, 그 피아노 소리가 런던, 빈, 로마 등의 피아노와 연결되는 등 상상 이상의 과학적 미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 다음으로 쓰인 ‘이상적인 도시’ ‘지구에서 달까지’에는 더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의 전기를 읽어보면 과학자가 아닌 그가 어떻게 100년 후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당대의 과학자들과 끊임없이 만나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상에 귀를 기울였고, 그것을 소설에 담아 놓았다. 틈만 나면 도서관에 앉아 새로운 발명이나 과학에 관해 공부했다. 100년을 앞선 그의 소설은 치밀한 과학적 기초 위에 세워진 상상력의 탑이었다. 시대를 성실하게 읽은 결과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과학이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동력이자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를 만든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과학 기술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대체로 예측할 수 있지만, 가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가 가기 전에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선언은 미국에 우주 시대를 안겨주었다. 반면 2011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하고 우주개발 프로그램을 민간기업에 이양한다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우주로 열린 창을 닫고 말았다. 지금은 정부와 민간기업의 합작 형태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지만, 중단 없이 계속 발전했더라면 지금은 과연 어떤 세상을 열었을지 아쉬운 마음이 크다. 다시 한 해가 시작됐다. 새로운 대한민국이 탄생되는 한 해이기도 하다. 앞으로 전개될 과학적 미래는 어떤 세상을 만들까? 우주로 열린 우리의 세상을 기대해본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도서관#낡은 책#미래#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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