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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작작 짜내어라’며 지주 계급 풍자…100년전 문예 공모전 들여다보니

입력 2022-01-06 11:34업데이트 2022-01-0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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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당선작 ‘작작 짜내어라’. 동아일보DB
“東亞日報一千號紀念 賞金一千圓의 大懸賞”(동아일보 일천호 기념 상금 일천원의 대현상)

동아일보 1923년 5월 3일자에는 이런 사고(社告)가 실렸다. 1923년 5월 25일 동아일보가 1000호를 맞는 것을 기념해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자신이 쓴 작품을 응모할 수 있는 현상문예를 연 것. 응모작 수는 확인되지 않지만 16개 부문에 걸쳐 당선작은 90여 편에 달했을 정도로 흥행했다.

지난해 12월 10일 문학 연구서 ‘’동아일보‘의 독자 참여 제도와 문예면의 정착’(소명출판)을 출간한 손동호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42)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독자참여제도 시행의 경험 축적, 신문사의 대대적인 홍보, 고액의 현상금, 독자들의 투고 열기 고조로 인해 현상문예는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며 “일제강점기 동아일보가 ‘조선민중의 표현기관’을 자임하고, 적극적으로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독자참여제도를 시행하면서 한국 문단 형성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1920년 4월 창간한 동아일보가 처음 벌인 문학 소통창구는 1921년 시작된 ‘독자문단’이다. 독자들이 투고한 소설이나 시를 신문 지면에 실으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시조시인 조운(1900~1948), 소설가 한설야(1901~?), 시인 유도순(1904~1938) 등 일제강점기 국내 문단에서 활약한 문인들도 독자 문단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독자 문단이 인기를 끌자 동아일보는 1923년 일천호 기념 현상문예를 연다. 단편소설, 동화, 시조 등 모집부문이 16개나 달했다. 주로 일제강점기 상황을 비판하는 독자의 목소리를 담았다. 예를 들어 ‘현금정치의 엄정비판’ 부문은 관권 남용, 감옥 제도, 경찰에 대한 불평을 받았다. 사실상 총독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주된 내용이라 응모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익명 투고가 가능했다.

만화 당선작 ‘이렇게 빨리고야’. 동아일보DB
동아일보 일천호 기념현상은 만화 부문에서도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풍자하는 작품을 주로 당선시켰다. ‘작작 짜내어라’라는 제목의 만화 당선작은 소작인이 지주 손에 쥐어 짜여 고통스럽게 돈을 토해내는 장면을 그렸다. ‘이렇게 빨리고야’라는 만화 당선작은 중국인 일본인 서양인이 조선인의 피를 빨아 먹는 모습을 그렸다. 외국 자본과 상품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진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손 교수는 “현상문예 당선작들은 사회적인 문제를 주로 다뤘다”며 “조선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아 민족지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총독부 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다뤘다”고 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도 ‘독자’를 ‘작가’로 만드는 등용문으로 문단의 형성 및 유지에 일조했다는 게 손 교수의 분석. 특히 동아일보는 ‘부인계’ ‘소년계’ 등 독자의 층위를 구분해 작품을 모집했는데 이는 문단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손 교수는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은 노동자나 농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삶을 그려내는 등 현실 문제를 다루고 식민지 삶의 실상을 고발했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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