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땅콩회항 닮은 김건희 사과와 尹 지지율 균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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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여론조사 윤석열 하락세 확연…가족 의혹 부적절한 대처가 원인
김 사과, 땅콩회항 사과 뭐가 다른가…혁명 수준의 혁신 없인 반전 난망

천광암 논설실장
천광암 논설실장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정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해 12월 7일 선대위 구성 후 가진 첫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지지율에 금 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김 위원장에게 그때의 장담이 아직 유효한지 되물어야 할 수준이다.

동아일보가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30.2%)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9.7%포인트 뒤졌다. 당선 가능성에 대한 응답은 윤 후보(27.4%)가 이 후보(55.6%)의 절반이었다. KBS MBC SBS CBS 등의 조사에서도 이 후보가 윤 후보를 8.9∼12.0%포인트 차로 오차범위 이상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TV조선 조사의 경우 한 달 전에는 윤 후보가 오차범위 밖에서 이 후보를 이겼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오차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오차범위 내 접전을 보여주는 조사도 있었지만 윤 후보가 오차범위를 넘어 앞서는 조사는 하나도 없었다(1일 발표 기준).

원인은 크게 3가지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윤 후보의 실언과 막말.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만큼 최근 한 달 사이 벌어지고 있는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둘째, 이준석 당 대표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다. 여러 조사에서 20대의 이탈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점을 볼 때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12월 중순 불거져 나온 김건희 씨의 허위경력 의혹이다.

윤 후보 측은 지난해 12월 26일 김 씨의 사과로 이 문제를 “털어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신년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동아일보 조사에서 가족 문제가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이 68.3%나 됐다. MBC 조사에서 김 씨의 사과와 해명이 “부족했다”는 답변은 69.3%에 달했지만 “충분했다”는 응답은 22.0%에 불과했다.

김 씨의 사과에 대해 곱지 않은 여론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이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제대로 된 사과라면 최소한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또 ‘누가 누구에게 사과하는지’가 사리에 맞아야 한다. 하지만 김 씨의 사과는 그렇지 않았다. 김 씨가 6분 동안 읽은 사과문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습니다”라는 단 한 문장이었다. 용서를 구하는 대상도 국민이라기보다는 남편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는 사과였다.

때로는 잘못 그 자체보다는 잘못된 사과가 더 문제를 키우는 일이 있다. ‘땅콩회항’도 그런 경우다. 이 사건이 처음 불거져 나온 것은 2014년 12월 8일자 한 조간신문의 8면에 실린 2단 기사였다. 대응이 적절했으면 쉽게 끝날 수도 있는 사건을 전 국민적 공분을 사는 대형 스캔들로 키운 것은 보도 당일 대한항공이 내놓은 한 장의 사과문이었다. 사과문의 요지는 3가지였다. 첫째, 승객에게 불편을 끼쳐 사과드린다. 둘째, 대한항공 임원들은 항공기 탑승 시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 의무가 있다. 셋째, 철저한 교육을 통해 서비스 질을 높이겠다. 조현아 부사장의 ‘갑질’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이,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생뚱맞은 사과문이었다. 사과의 내용과 주체, 객체가 모두 핵심을 벗어난 김 씨의 사과가 ‘땅콩회항’ 사과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굳이 땅콩회항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윤 후보는 ‘전두환 칭송 발언’과 관련해서도 떠밀리다시피 사과에 나섰다가, 한술 더 떠 ‘개 사과’ 논란까지 빚은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처법에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내부갈등 문제에 대해서도 그때그때 ‘땜질’에 그칠 뿐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윤 후보의 지지율 하락세는 ‘혁명 수준의 혁신’ 없이는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와 있다.

영어의 ‘revolution’을 혁명(革命)으로 번역한 것은 일본인들이다. 공자가 가죽 끈이 세 번 닳도록 읽었다는 주역의 ‘혁(革)’괘에서 따왔다고 한다. ‘혁괘’에는 ‘대인호변(大人虎變) 소인혁면(小人革面)’이라는 말이 있다.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 그릇이 큰 사람은 호랑이처럼 변하고, 그릇이 작은 사람은 얼굴빛을 바꿔 변하는 시늉만 한다는 뜻이다. 좀처럼 변할 줄 모르는 윤 후보가 호랑이해를 맞아 한번 음미하고 실천해봄 직한 말이다. 적어도 ‘손바닥 왕(王)’자보다는 효험이 있을 것이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
#김건희 사과#땅콩회항#윤석열#지지율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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