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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눈 밝아지는 오묘한 물건…” 안경은 언제 조선에 왔을까

입력 2022-01-01 03:00업데이트 2022-01-0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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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시스 로드/한지선 지음/424쪽·2만 원·위즈덤하우스
13세기 유럽서 발명해 중국 유입…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전파 추정
실크로드 못지않은 ‘안경 로드’ 따라 유라시아 문명 교류 네트워크 추적
18세기 이후 조선에서 안경은 관리와 학자들이 어렵지 않게 갖출 수 있는 일상용품이었다. 채용신이 1911년 그린 우국지사 매천 황현의 초상화(위 사진). 15세기 중반 유럽에서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안경산업이 번성했고 이 안경들은 해상과 육상의 무역로를 거쳐 중국에까지 도달했다. 화가 요하네스 스트라다누스가 1582년 이탈리아에서 그린풍속화. 동아일보DB
“서양의 백유리가 판매되기 시작해 안경을 만들어 동전만 하니, 눈앞에 두면 눈이 밝아져 털끝을 능히 볼 수 있으니 오묘하구나.”


청나라 초 문인 공상임(孔尙任)이 남긴 기록이다. 한때 안경은 서구식 근대화의 산물로만 여겨졌지만, 조선 정조대왕을 그린 영화와 TV 드라마가 안경 쓴 왕의 모습을 등장시키면서 ‘조선시대 안경’에 대한 인식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안경은 누가 언제 처음 만들었으며 언제 어떻게 동아시아에 전래됐을까.

중국 해양사를 연구해 온 저자는 전화, 휴대전화, 인터넷을 능가하는 편의의 혁신을 가져온 ‘안경’을 키워드로 중세 이후 근대까지의 유라시아 교역 네트워크를 추적한다.

안경의 발명은 1280년대 유럽에서 이뤄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배경에는 이슬람에 축적된 유리 기술과 지식이 있었고, 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는 유럽과 아랍에서 13세기 말 동시에 퍼져 나갔다. 중국에 유입된 기록은 명 선덕제(재위 1425∼1435년) 시대부터 보이지만 본격적인 사용은 16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초기 아시아로 전파된 안경은 외교와 무역을 병행하는 명의 조공무역 루트를 따랐다. 안경과 기타 물품들을 조공한 지역은 사마르칸트(현재의 우즈베키스탄)와 천방국(메카), 믈라카(말레이시아) 등으로 기록돼 명이 북방과 해양의 이민족을 구분하면서 관리한 방식을 보여준다. 저자는 안경의 중국 전파가 원 제국 멸망 이후 단절된 것으로 여겨졌던 유라시아 교역 네트워크 회복의 증거라고 해석한다. 명은 조공품에 후한 보상을 했고, 품질 좋은 안경들이 중국으로 들어왔다.

중국인들이 안경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면서 안경은 동아시아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명 만력제(재위 1572∼1620년) 시대에는 광저우를 시작으로 중국 강남 지역에 안경 제작이 확산됐다. 원시경(돋보기)이 시작이었지만 이어 근시경도 보급되었다. 청 건륭제(재위 1736∼1796년) 때가 되면 도수를 12단계로 세밀히 나누어 판매할 정도였다. 중국인들은 유리보다 수정으로 만든 안경을 높이 평가했다. 유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화기(火氣)가 눈을 해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안경이 조선에 전래된 것은 임진왜란 때로 보인다. 이익(李瀷)은 1740년경 저술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이 애체(애j)라는 안경이 장차 중국으로 전해오게 될 것이고 가정에서도 반드시 갖출 것이다’라고 썼다. ‘애체’는 조선시대 안경을 부르는 가장 친숙한 이름 중 하나였다. 18세기 북경을 오간 연행(燕行) 사절의 기록에도 안경이 수없이 언급된다. 실학자 이규경(1788∼1856?)이 쓴 ‘안경류’에는 안경을 근시안경 원시안경으로 구분하고 형태에 따라서도 구분한 글이 나온다.

일상의 중요한 사물을 화제로 교역의 세계사를 꼼꼼히 풀어간 점이 돋보이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다. 저자는 유럽에서 안경이 발견된 뒤 반세기 뒤에는 중국에도 안경이 도달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더 세밀한 논증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책의 주제에 중요한 부분도 아닌 만큼 생략하는 편이 나았을 듯싶다. ‘선덕 연간’ ‘건륭 연간’ 등의 표기가 나올 때마다 서기 연도를 부가해 표기했다면 중국 역사에 친숙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에게 한층 친절했을 듯하다. 종종 등장하는 ‘글라인딩’ 표기는 ‘그라인딩(grinding·연마)’의 오기로 보인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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