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근형]대선 후보가 말하지 않는 청년세대의 암울한 미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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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소득의 30%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낸다고 생각해봐라. 어느 국민이 버티겠나. 먼 미래의 일이 아니고 우리 청년세대가 겪게 될 일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소장파 연금 전공 학자 A는 한숨부터 쉬었다. 수년 만의 조우였지만 근황 이야기도 건너뛰고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국민연금 개혁에 침묵하는 대선 주자들의 비겁함에 대한 이야기로 점심시간이 꽉 채워졌다. 그는 “지금 당장 개혁해도 문제가 심각한데, 그대로 두면 약 30년 후엔 연금 적자에 의한 국가부도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A의 말처럼 국민연금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학계,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단지 ‘먼 미래의 위기’로 치부하며 ‘어려운 숙제’를 미루고 있을 뿐이다.

정부 추계(4차 재정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적립기금은 2057년 고갈된다. 저출산 저성장 추세를 반영하면 이 시점은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위기론이 나올 때마다 ‘고갈론’이 강조되는 건 그 이후의 삶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암울하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는 기금이 없어도 서유럽처럼 세금(부과방식)으로 운영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과방식으로 운영하려면 2050년 보험료율을 20.8%, 2060년 26.8%까지 올려야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 국민연금 개혁 없인 보험료가 현재(9%)의 2∼3배까지 오른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이 추계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것. 4차 재정계산은 2020년 합계출산율을 1.24명으로 가정했지만, 현실은 0.84명까지 떨어졌다. 미래 보험료를 낼 사람이 적어진다는 의미다. 제대로 추계하면 보험료가 30%대(국회 예산정책처)까지 늘어난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복지의 천국’ 핀란드도 비슷한 상황이다. 핀란드연금센터에 따르면 출산율이 1.45명으로 유지되면 미래 보험료가 30% 수준으로 버틸 수 있지만 1명까지 떨어지면 보험료를 37%까지 올려야 한다.

재정적자는 또 어떤가. 비교적 ‘낙관적인’ 정부추계만 봐도 2060년 한 해만 국민연금으로 인한 적자가 327조 원, 2088년 782조 원에 이른다. 내년 정부 예산(604조 원)보다도 큰 액수다. 2088년까지 누적적자가 1경7000조 원에 이른다는 전망도 있다. ‘경’ 단위의 적자 규모가 상상조차 잘 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럴진대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대선 주자들은 ‘연금개혁’에 침묵하고 있다. 거대 양당 후보는 연금공약조차 없는 실정이다. 연금개혁에 미적거리며 골든타임을 놓친 지난 정부들처럼 임기 5년만 버티자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청년세대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다. 연금개혁을 뺀 ‘청년 공약’은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청년세대가 향후 소득의 30%를 연금 보험료로 떼일 수 있단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몇 푼 안 되는 현금성 복지로 무마하려 했던 대선 후보들의 위선에 분노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선 주자들이 청년들과 연금개혁에 대한 진솔한 대화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아직 대선까지는 67일이 남아 있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국민연금#연금개혁#청년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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