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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유성열]코로나 시대의 히어로, 얼굴 없는 천사들

입력 2021-12-31 03:00업데이트 2021-12-3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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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열 사회부 차장
올해 연말은 유독 차가운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변이를 거듭해 우리의 일상을 여전히 삼키고 있어서다. 많은 사람들이 송년 모임을 취소해야 했고, 연말마다 활기찬 기운으로 가득했던 광화문 거리는 초저녁부터 썰렁한 모습이다.

세밑마다 퍼져나갔던 온정의 물결도 올해는 잔잔해 보인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서울광장에 설치한 ‘사랑의 온도탑’은 30일 현재 83.2도를 가리키고 있다. 이달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운영되는 온도탑은 모금회 목표액의 1%가 모금될 때마다 1도씩 수은주가 오른다. 이번에 모금회가 설정한 목표는 3700억 원. 남은 한 달 동안 620여억 원만 더 모금하면 100도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모금회에 따르면 대기업의 연말 기부가 이어지면서 온도가 80도를 넘겼지만, 개인 기부자가 지난해보다 약 11만 명 감소했다고 한다. ‘100도 달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 더구나 온도탑 옆에 설치된 구세군 냄비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겨울 한파 속에 사랑의 온도탑마저 얼어붙진 않을지, 지날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익명의 기부자들이 전국 곳곳에 온기를 퍼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27일 70대로 추정되는 한 노인은 경기 구리시 수택2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검은 비닐봉지를 건넸다. 봉지에는 현금 5만 원권 200장, 총 10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이 노인은 “1년간 폐지를 모아 팔아서 번 돈”이라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한 뒤 사라졌다. 이름을 묻는 직원에게는 “김 씨”라고 쿨하게 답했다.

2000년부터 21년 동안 익명으로 선행을 베푼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노송동 행정복지센터는 29일 오전 “성산교회 앞 트럭에 박스를 놓았다”는 전화를 받았고, 박스에는 5만 원권 다발과 돼지저금통, 그리고 “불우한 이웃을 도와달라”고 적힌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박스에 담긴 금액은 총 7009만4960원. 전주의 천사는 이렇게 22년간 총 8억872만8110원을 기부했다.

영남에서도 선행이 이어졌다. 28일 오후 부산 수영구 광안1동 행정복지센터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여성 1명이 찾아와 봉투를 건넸다. 이 여성이 “어려운 이웃에게 써 달라”고 한 봉투에는 6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경북 영주의 두 노인은 폐지를 팔아 번 95만 원과 노인일자리로 모은 10만 원을 영주1동 행정복지센터에 기부했고, 지난해 100만 원을 기부했던 익명의 기부자는 올해도 100만 원을 행정복지센터 기부함에 남겼다.

지난해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온도탑이 100도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목표액 3500억 원을 올해 1월 20일 조기에 달성했다. 최종 모금액은 4009억 원, 온도탑은 114.5도까지 올라갔다. 코로나19 시대의 진정한 히어로, ‘얼굴 없는 천사’들이 있기에 올해도 믿는다. 100도, 아니 그 이상도 달성할 수 있기를.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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