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키운 무책임한 ‘코로나 정책’[동아광장/이지홍]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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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부진하지만 진짜 심각한 건 분배
자산과 교육 격차 천정부지로 치솟아
일상회복 앞당기고 건설적인 정책 마련해야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21년 한 해가 우울하게 저물고 있다. 진화하는 괴(怪)바이러스와 최첨단 백신의 혈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눈 빠지게 기다리던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는 45일 만에 조기 아웃됐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때문에 경제 전망도 어둡다. 정부는 임기 끝까지 헤매고 있고, 대선판에서 희망과 감동은 눈 씻고 찾기 힘들다. 그야말로 난국이다.

한국의 코로나 시대 2년 차는 여러 면에서 그 원년보다 퇴보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범적인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진국들처럼 마스크 한 번 벗지 못한 채 코로나19 상황이 급속히 나빠졌다. 경제도 상황이 비슷하다.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률이 올해 4% 정도까지 반등했으나 글로벌 순위가 하락했다. 경쟁국 대만은 6%가량 성장하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훨씬 뛰어난 성적이 확실시된다. 미국 역시 높은 성장률이 예상되는데, 그러고 보니 이번 정부는 산업화 이후 임기 내 평균 성장률이 미국에 뒤진 첫 정부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성장도 지지부진하지만 진짜 심각한 건 분배 문제다. 수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초토화됐는데 골프장은 부킹이 안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실내 활동은 줄고 실외 활동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코로나 시대를 맞아 소비 패턴과 경제 구조에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미친 집값도 잡히지 않았다. 한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주택 보유 가구와 전세 가구의 평균 자산 격차가 1년 전과 비교해 40% 가까이 더 벌어졌다. 경제 위기가 닥치면 대개는 자산 가치가 보편적으로 하락하고 또 쉽게 회복되지도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

교육 격차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한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학교 폐쇄 기간이 확산세가 더 위중했던 일본,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보다 훨씬 더 길었다고 한다. 이 자체만으로도 큰 문제인데 사교육은 양극화를 더 부추겼다. 거리두기가 길어질수록 사교육을 받는 고소득층 아이들과 부실한 온라인 수업에만 노출된 저소득층 아이들 간 격차는 그만큼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 나라에서 청소년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인센티브가 ‘학원 방역패스’란 사실은 정말 웃지 못할 코미디다.

불평등을 키운 데는 코로나 사태의 본질을 시종일관 잘못 읽은 무책임한 경제 정책도 한몫을 했다. 이번 위기의 발단은 전염병 창궐로 인한 노동시장 쇼크다. 일을 멈춰야 하니 생산과 소득이 감소할 테고, 이에 따른 연쇄적 경기 침체를 막고자 각국 정부는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때 터득한 매뉴얼대로 엄청난 규모의 돈을 초스피드로 풀었다.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치자.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경제가 생각보다 튼튼했다. 자본주의가 낳은 기업과 기술의 저력은 글로벌 공급망을 견고하게 떠받쳤고, 경이롭게도 우려한 생필품 부족은 언제 어디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집값도 계속 올랐다.

코로나19 영향이 일부 업종·업태에 집중되고 그마저 비대면 대체재가 빠르게 생겨난 상태에서 장기화된 확대 통화·재정 정책은 수요를 과도하게 끌어올렸다. 올해 초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마저 역대급 규모의 경기부양안을 밀어붙였을 때 이미 많은 경제학자들이 공급 부족과 인플레를 심각하게 우려하기 시작했다. 그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지금, 한국의 현금 살포 전광판도 만만치 않다. 5차례에 걸친 재난지원금만 55조 원이다. 그리고 이게 다 미래세대가 갚을 빚이자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위험 요소다. 인플레는 현금 가치를 떨어뜨려 내 집 장만 등을 위해 돈을 모으는 이들에게 치명적이다. 또 사회를 전반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드는 소득 재분배 효과를 유발하기 때문에 조기 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도 결국 서민들이다.

일상회복이 늦어지고 잘못된 정책이 반복될수록 취약계층의 고통은 커진다. 하루빨리 위드 코로나를 재개하고 건설적인 정책에 도전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2022년 역시 2021년의 재탕이 될까 걱정이다. 코로나19의 종식은 여전히 요원하다. 폭증하는 국가부채는 1000조 원을 넘어선다. 경쟁국들은 내년에도 앞서갈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데 여야는 궤변과 맹탕만 주고받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어김없이 선거용 돈 풀기에 돌입했고, 국민의힘도 손실보상에 쓰겠다며 ‘50조, 100조’를 질렀다. 하지만 정작 자영업자들은 그 돈이 어떻게 쓰일지, 청년들은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할 건지 묻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 학교 때문에 노심초사 중이다. 답답할 따름이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코로나 정책#불평등#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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