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은우]中 ‘SK, 인텔 낸드 인수’ 승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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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를 승인했다. 대규모 인수합병은 이해관계국의 반독점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번 인수는 미국 중국 영국 유럽연합(EU) 등 8개 나라의 승인이 필요했다. 중국이 마지막으로 승인함에 따라 인수 발표 14개월 만에 절차를 마무리하게 됐다. 미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는 중국이 미국 기업 인텔의 거래를 허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은 한미 간 거래를 막기보다 한국을 ‘우리 편’으로 이끄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미국은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만들면서 중국을 배제해왔다. 기술과 공급망에서 열세인 중국은 안정적으로 반도체를 공급받을 곳이 필요한데, 미국보다는 한국이 나을 수 있다. ‘미국의 인텔’보다는 인텔 사업부를 인수한 한국 기업이 믿을 만하다는 뜻이다. 이번 인수로 SK하이닉스가 중국 다롄의 인텔 낸드 공장을 유지하면, 고용과 투자가 늘어난다는 점도 중국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갈등보다 실리를 선택한 중국이다.

▷이번 인수 승인은 미중 틈새에서 한국의 생존 전략을 보여준다. 실력만 있다면 미국과 중국이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이런 구도를 이용해 두 나라로부터 각종 인허가와 세제 혜택을 받아낼 수도 있다. 우리 기업이 미중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 수는 없다. 원천기술과 공급망은 미국이 우위지만, 최대 수출시장은 중국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압박으로 미국에 공장을 증설하면서도 중국 입장을 살펴야 한다. 두 나라 간 견제를 활용해 우리 입지를 넓혀 나갈 필요가 있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SK하이닉스는 낸드 분야에서 키옥시아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선다. 1위 삼성전자와 함께 한국이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게 된다. 메모리의 일종인 낸드는 전원이 끊어져도 저장한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실내에서 인터넷을 쓰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를 소화할 낸드 등 메모리 수요가 늘어났다.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투자를 늘리면서도 메모리 1위 위상을 유지해야 한다.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계 자본인 와이즈로드캐피털은 올해 비메모리 제조사인 매그나칩을 인수하려다 미국 반대로 포기했다. 중국도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의 인수합병을 막는 것으로 대응해 왔다. 이런 갈등이 언제든 한국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인수로 한 고비를 넘었지만, 안심할 순 없다. 탄탄한 기술과 생산 능력을 갖춰 가깝게 지내고 싶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실력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 줄 수 있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
#중국#sk하이닉스#인텔 낸드 인수#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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