工을 더한 藝 미술의 ‘전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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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에르메스 ‘전이의 형태’ 전
내년 1월 30일까지 작가 7인 참여… 가죽 활용한 다양한 접근방식 선봬
에르메스 공방 초청받은 미술가들, 세계적 장인들의 솜씨 접하고 실험
현대미술 감각에 공예기법 등 접목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작가와 장인의 만남, 그리고 나아가서는 예술과 비즈니스 세계 간의 대담한 만남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의 필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로랑 페주 에르메스 재단 디렉터)

“끊임없는 서두름과 효율성에 대한 갈망이 지배하는 오늘날, 지식전수, 교류, 전달을 위한 인고의 시간은 완전히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가엘 샤르보 전시 공동 큐레이터)

‘아티스트 레지던시’ 10주년을 기념해 아틀리에 에르메스는 10일부터 2022년 1월 30일까지 현대미술가 7인이 참여하는 전시 ‘전이의 형태(Formes du transfert)’를 개최하고 있다.

바실리 살피스티의 ‘베레니케가 된 복스(2018)’.
바실리 살피스티의 ‘베레니케가 된 복스(2018)’.
재단은 이번 전시가 그들이 추구해 온 가치를 오롯이 드러내는 결과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한다. 최상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장인들의 기술과 노하우를 현대 미술가들에게 전수함으로써 창작 할동을 후원하고 궁극적으로 예술가 환경의 보존, 사회적 연대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바로 이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담겨 있다는 얘기다.

에르메스재단은 2010년부터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4명의 작가를 선발해 에르메스 공방에 초청해왔다. 참여 작가들은 주세페 페노네, 리처드 디콘, 장미셸 알베롤라 등 세계적인 작가의 멘토링을 받으며 좀처럼 다뤄보기 어려운 크리스털, 가죽, 은, 실크와 같은 재료와 장인들의 숙련된 기술을 접하고 실험해 볼 기회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작가들은 마음껏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었다. 동시에 각 공방의 장인들 또한 익숙했던 일상의 작업을 벗어나 작가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새롭게 자신의 능력을 연마하는 시간을 누리게 됐다.

아나스타지아 두카의 ‘르 콜랑(2016)’.
아나스타지아 두카의 ‘르 콜랑(2016)’.
작가와 장인들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는 상생의 기회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일화에 그치지 않았다. 전시 공동 큐레이터인 가엘 샤르보는 “몇 년 후에도 많은 장인들은 이 만남이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창조적인 예술가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고 전한다.

이번 프로젝트 전시는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서울 아틀리에 에르메스를 시작으로 도쿄 르 포럼과 프랑스 팡탱 마가쟁 제네로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이 중 아틀리에 에르메스는 특히 가죽을 통한 다양한 예술적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전의 것’으로부터 ‘이후의 것’으로 물리적 형태는 물론 존재 자체의 의미마저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변신(Metamorphoses)’은 오비디우스로부터 카프카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지속적인 주제가 돼 왔다. 이번 전시는 에르메스 공방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가죽이 현대미술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는 현상을 음미해 보게끔 한다.

현대미술을 통한 가죽의 다양한 변신을 보여주는 전시 ‘전이의 형태’. 가운데 보이는 작품이 이오 뷔르가르의 ‘무슨 일이 생기든(2016)’.
현대미술을 통한 가죽의 다양한 변신을 보여주는 전시 ‘전이의 형태’. 가운데 보이는 작품이 이오 뷔르가르의 ‘무슨 일이 생기든(2016)’.
‘무슨 일이 생기든’의 작가 이오 뷔르가르는 1987년생으로 보르도 인근 탈랑스에서 태어나 파리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그림부터 조각, 프레스코, 저부조까지 다양한 매체와 방식을 기반으로 현실과 환상 세계를 자연스레 넘나든다. 셀롱쿠르 가죽 공방의 첫 레지던시 작가로서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언어와 그림, 부피감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가죽 장인의 도구와 그녀의 상상력에서 영감을 받은 결과물이 바로 트렁크에 담긴 일련의 오브제 ‘무슨 일이 생기든’이다.

세바스티장 구쥐의 ‘역광, 야자수(2016)’.
세바스티장 구쥐의 ‘역광, 야자수(2016)’.
‘역광, 야자수’의 세바스티앙 구쥐는 1978년생으로 파리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낭시국립미술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그림과 조각을 매개로 때로는 가벼운, 때로는 무거운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는 2018년 생쥐니앙 장갑 및 가죽공방의 레지던시에서 가죽 작업을 처음으로 접했다. 그는 공방에서 사용되던 양가죽에 자연스레 흥미를 느끼게 됐다. 가죽 장인의 숙련된 기술을 바탕으로 검은색 양가죽, 철과 나무로 만든 이 작품은 가죽에 대한 상상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검은 실루엣의 야자수를 구현하면서 작품 하단의 밑면을 형광 주황색으로 칠함으로써 마치 공간에 떠있는 듯한 효과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검은색 가죽으로 뒤덮인 다양한 식물들이 있는 ‘황혼의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한다.

파리 태생의 베랑제르 에넹은 에스티엔 고등그래픽예술산업학교 판화 과정 및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동시에 언어학을 수학했다. 그녀의 작품에는 유머와 풍자적 재치가 담겨 있다. 2020년 알랑 가죽 공방에서 진행된 레지던시에서 제작한 작품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드러난다. 그녀는 가죽 조각에 마르케트리(상감세공·바탕으로 짠 직물에 다른 색의 무늬를 끼워 넣어 짜 맞추는 방식) 기법을 적용해 파티가 끝난 후의 장면을 묘사하는 설치물을 만들었다. 기쁨과 우울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끝나버린 축제’는 정물화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가죽 제작기술을 실험해 돋보인다.

장윤정 기자 yunj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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