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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돌로 자연에 맞서며 만든 제주 문화[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1〉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입력 2021-12-23 03:00업데이트 2021-12-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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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제주 해안에서만 볼 수 있는 구조물이 있다. 용천수, 불턱, 삼판구조(혹은 이판구조) 포구, 도대불, 환해장성 등이 대표적이다. 해안 길 걸으며 마주할 때마다 원래 쓰임을 다하고 외면당하는 듯한 서늘함을 느낀다.

제주 어촌에는 반드시 용천수가 있다. 빗물이 현무암층으로 스며 지하로 흐르다가 바닷가에 이르러 솟구친다. 용천수 양에 따라 마을 크기가 정해질 정도로 생명수이며 마을을 있게 한 근원이다. “낯 씻을 때 물 많이 쓰면 저승 가서 다 먹어야 한다”는 속담은 제주에서 각별했던 물의 소중함을 표현한다. 지하수 개발 전 이웃집 잔치나 제사가 있을 때 물을 길어주는 물 부조는 제주만의 문화다. 용천수 주변 바닥을 평평한 돌로 깔아서 채소 세척이나 빨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돌담을 둘러 바람막이를 했다. 매일 물 길어 나르는 여성의 노동공간이자, 담소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는 공동체 문화의 핵심 장소였다. 불턱은 또 하나의 여성공동체 공간이다. 몸을 덥히고, 물질을 준비하고 음식을 나눠 먹던 장소다. ‘물질은 불턱에서 시작해서 불턱에서 끝난다’라고 할 정도로 해녀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공간이다. 요즘은 해녀 탈의장이 그 기능을 이어받아 쓰임새가 사라졌다.

포구 역시 뭍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다. 제주 해안은 용암 암반과 암초가 많아 전통적으로 작은 포구가 많았다. 바람과 거친 파도가 잦아 돌을 쌓아 이중 혹은 삼중 방어막 포구를 만들었다. 안쪽의 안캐는 태풍 때 피항하거나 수리하는 배, 가운데 중캐는 출항할 선박, 바깥쪽에 있는 밖캐는 수시로 드나드는 배가 정박한다. 포구에 돌탑을 쌓아 불을 밝힌 도대불도 빠뜨릴 수 없다. 1915년부터 1960년대까지 제주도에서 이용한 근대식 등대로 현무암을 거칠게 다듬어서 쌓은 민간 등대였다.

뭍 해안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제주 해안 전역을 돌담으로 둘렀던 환해장성 또한 볼만하다. 삼별초 침입을 막기 위해 쌓기 시작했는데 삼별초가 점령한 후에는 여몽연합군 방어용으로 쓰였다. 지속적으로 보수해 조선시대에는 왜구와 이양선을 막는 데 활용됐다. 지금은 화북, 애월, 고내, 북촌, 동복, 함덕, 평대 등지에 남아 있다.

제주민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때로는 강하게 맞서야 살아낼 수 있었다. 돌은 환경을 극복하는 도구였으며 용천수, 불턱, 포구, 도대불, 환해장성 등으로 표상된다. 돌을 이용해 자연에 저항했고, 수많은 신(神)에 마음을 맡겼다. 척박한 화산섬에서 신에 의지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모질고 고단한 삶이었다. 제주에 1만8000신이 있다는 말은 그만큼 토속신앙에 대한 믿음이 깊음을 뜻한다. 신성성이 제거된 화석화된 신화가 아니라 의례에서 구송되는 살아있는 신화가 지금도 전승되고 있다. 돌과 신에 의존한 삶이라 할 수 있다.

환상적인 경관도 좋지만 손길, 숨결, 땀이 밴 곳을 느끼는 여행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제주 해안가에 산재해 있는 돌로 만든 전통 구조물은 역사, 문화, 경관, 생태적 가치가 탁월하다. 원래의 쓰임은 다했지만 참신한 문화기행의 장을 열 수 있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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