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확진자 7000명대, 45일 만에 거리두기 부활… 참패한 ‘K방역’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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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터샷 접종 전 일상회복 조치… 고위험군 돌파감염 확진자 확산
의사-간호사 의료현장 대거 이탈
병상 부족 대안 ‘재택치료’ 강행… 방치수준 치료에 중환자만 늘어
“부작용 등 객관적인 설명 없이 국민에게 백신접종 강요 안 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치솟고 있다. 20일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집계에 따르면 현재 재원 중인 코로나19 위중증 환자는 997명이다. 정부는 위중증 환자 수가 1000명을 넘어가면 코로나19뿐 아니라 일반 환자의 진료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생존위기에 직면한 소상공인들의 원성이 극으로 치닫고 코로나19 백신접종률이 80%를 돌파한 10월 말만 해도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여겨졌다. 한국은 코로나19 방역에 비교적 선방한 나라이므로 국민들도 일상 회복과 감염병 통제의 병행이 가능하리라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하지만 정부는 위드 코로나 45일 만에 사회적 거리 두기 복귀를 결정했다. 현실은 믿기 힘들 정도다. 하루 7000명이 넘는 확진자 수는 연일 우상향 중이고 사망자는 하루 100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일까. 관련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정부의 ‘백신접종 효과’ 예측 실패

정부는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작하면서 코로나19 관리 방향을 ‘확진자 억제’에서 ‘중증·사망자 발생 억제’로 바꿨다. 방역 담당자들은 “백신을 맞으면 사망과 중증 진행 위험이 낮아진다” “확진자가 다소 늘어도 의료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실은 달랐다. 사망자와 위중증 환자가 쏟아져 의료 역량이 한계에 다다른 모양새다.

예방 접종률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면서 9월과 10월 50대 이상 중증 환자가 감소했다. 정부는 이 시기의 중증화율을 기준으로 단계적 일상 회복에 대한 병상 확충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거리 두기 완화와 함께 미접종 50대 이상의 중증 환자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백신접종을 완료한 고위험군의 돌파감염 중증 환자도 발생했다. 델타 변이로 백신의 효과 감소도 예상보다 빨리 나타났다.

단계적 일상 회복 직전에 준비된 중환자실은 890여 개였다.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는 20일 3800여 개 병상을 추가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위중증 환자 증가로 중환자 병상은 이미 꽉 찼다. 이에 서울대병원 등 국립대학병원들은 16일 국립대병원장 긴급회의를 열고 정부의 행정명령에 따라 이미 확보된 병상 외에 중증환자 치료병상을 추가로 확보하는 등 선제적이고 자발적인 비상행동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의료 역량을 초과하는 수준의 확진자 발생에 대해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 백신 효능은 접종 후 시간이 경과할수록 떨어진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2월 말 고령층부터 코로나19 백신접종을 시작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계층의 면역력이 가장 크게 떨어졌다. 그런데 정부는 부스터샷 접종 등을 통해 이들의 면역력을 높이기 전 일상 회복 조치부터 시작했고, 결국 고령자가 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중환자가 급증하고 의료 체계에 위기를 초래했다.

정부도 오판을 인정했다.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9일 YTN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백신 효과가 6개월은 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3개월부터 효과가 떨어졌다”고 밝혔다. 손영래 중수본 사회전략반장(보건복지부 대변인)도 8일 브리핑에서 “코로나19 백신접종자의 중증화율이 당초 가정한 1.6%보다 다소 높은 2∼2.5%로 나타났다”며 백신접종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병상·의료진 부족… 의료자원 분배 실패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듯 병상 확보 실패는 치명적이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급성기 병상 기준)는 7.1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7개)의 거의 2배다. ‘병상 과잉’이 문제인 나라인데 왜 감염병만 닥치면 병상을 구하지 못해 대기하다 숨지는 환자가 연이어 나오는 걸까. 병상과 의료진 등 의료자원 분배에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와 병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중이다. 코로나 위중증 환자 치료 여력이 있는 대형 민간병원들은 정부의 지원 부족을,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민간병원들의 비협조를 탓한다. 오미크론 등 변이 발생, 예상보다 급격한 고령자들의 백신 효과 저하 등 예측 가능한 변수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민간병원들 역시 병상을 내놓는 데 소극적이었던 부분은 있다. 코로나 격리 중환자실 병상 한 개당 정부가 지급하는 손실보상금은 기존 병상 단가의 10배에 달한다. 적어도 병상에 있어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병원 측의 주장을 쉽게 납득할 수 없다.

병원들은 병상만 내놓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감염병 병실에 맞는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 또 인력 충원 없이 병원들에 병상 확보만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원활한 병상 순환에 실패한 점도 문제다. 중증 환자로 병원에 배정됐지만 중한 처치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환자도 있고 더 이상 전파력이 없는데도 환자가 원한다는 이유로 중환자 병상에서 계속 버티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정부는 16일 꼭 필요한 환자만 중환자 병상에 머물도록 손실보상금을 재원일수에 따라 차감하고 20일 이상 중환자실 입원 시 환자가 치료비를 부담하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현장에선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중환자가 고령이다 보니 증상 발현 20일이 지났는데도 인공호흡기를 낀 분들이 있다”며 “이런 환자에게 퇴원하라고 하면 환자는 갈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도리어 갈등만 키운 의료진 지원 방식도 화를 키웠다. 정부는 코로나 환자를 간호해 본 경험이 없는 파견 간호사들이 월 900만 원을 받고, 그 절반의 임금을 받고도 중증도 코로나 환자를 돌보는 기존 숙련된 간호사들을 그대로 방치했다. 전체 병상 절반을 코로나 환자를 위한 격리병상(205병상)으로 운용하는 서울의료원의 경우 올해 의사 24명, 간호사 183명이 병원을 떠났다. 파견 인력에 대한 충분한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인력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소외시킨 무신경한 지원 정책이 현장 의료진 이탈을 부추긴 건 명백한 실책이다.

재택치료는 사실상 재택방치… 중환자 키운 재택치료

코로나19 재택치료 중 갑자기 증상이 악화하거나 재택치료를 받으며 병상 대기 중이던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 재택치료를 위해서 보건소에서는 재택치료 키트를 집으로 보낸다. 체온기, 산소포화도 측정기, 해열제 등이 필수 품목이지만 누락돼 다시 받아야 했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재택치료의 허점이 계속 드러나자 정부는 8일 재택치료 개선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의료 현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의료계는 권고안과 함께 구체적인 실행 방안까지 정부에 전달했으나 개선안에는 이송체계 확대 방안만 일부 담겼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특히 정부의 모니터링 방향이 잘못됐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지금 방식으로는 중환자 수를 줄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염호기 위원장은 “최근 임상 현장을 보면 노인이라도 발열 증상이 없는 환자가 많고 산소포화도에 문제가 없는데 갑자기 중증이 되는 환자도 상당하다”고 밝혔다. 염 위원장은 “산소포화도나 발열 체크만으로는 증상 악화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이번에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천은미 호흡기내과 교수도 “방역당국은 급증하는 확진자에 대해 고위험군 구별 없이 재택치료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며 “재택치료는 감염자가 체온과 산소포화도를 자가검사로 확인하고 하루에 1, 2회 의료진 비대면 상담만 하는 것으로 실제 치료는 없다”고 주장했다. 확진자들은 재택치료가 아니라 ‘재택 방치’되고 있다는 것.

천 교수는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의 특성상 초기에 수액주사 등 조기 대응만 웬만큼 해줘도 중증으로 가는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재택치료 전에 투여할 경구치료제 도입을 최대한 앞당기고 항체치료제 투여와 관련해서는 생활치료시설이나 외래진료 주사센터, 전담병원에서 대상자를 확대해 조기 투여함으로써 입원율과 사망률을 줄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우주 감염내과 교수도 “집에 있다가 산소포화도가 94% 이하가 돼야 입원 할 수 있다는 것은 중증환자를 집에서 양산하겠다는 것”이라며 “그 상태면 이미 폐렴이 심해서 중증 환자가 되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엇갈리는 전문가 주장… 국민은 혼란


일부에선 방역 실패를 언급하는 것에 대해 갈등을 조장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엇갈리는 전문가 집단의 주장과 들쑥날쑥한 대국민 메시지다.

현재 코로나 일상회복지원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 교수는 중증 환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한 의료진에 대해 “현장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가 현장 상황을 제대로 모른다는 의료진은 현재 상급병원에서 코로나 중환자를 보는 의사다. 그는 또 병상 문제를 언급하자 “그럼 병상이 부족한데 어떻게 할까요”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19 초창기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코로나 상황을 활발하게 올리며 주목을 받은 교수다.

김우주 교수는 “전문가는 객관적인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로 말해야 한다”며 “전문 의료인이 SNS에 본인 힘들다고 올리고 백신접종을 ‘간곡히’ 부탁한다는 등 감정에 호소하는 행동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 백신접종에 대해서는 “백신의 부작용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자녀를 둔 부모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는 “이런 경우 전문가라면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에 대해 전달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설득해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은 부작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서 접종만 강요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사망자도 없고 중증환자 비율도 낮은 소아청소년에게 백신패스를 적용하고 학교로 찾아가 백신을 접종하는 것은 자칫 확진자가 늘어나는 게 학생들 때문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 부스터샷 등 고위험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어린 학생들에게 지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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