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정은 잃어버린 10년, 시한폭탄 된 北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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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어제 김정일 사망 10년을 맞아 중앙추모대회를 개최하는 등 대대적인 추모 분위기를 띄우며 김정은 유일영도체제의 확립을 강조했다. 인민일보는 “김정은 동지를 충직하게 받드는 것이 (김정일) 장군님에 대한 의리를 다하는 길”이라고 했다. 이날 유엔총회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표결 없는 전체합의(컨센서스)로 채택했다. 2005년 이후 17년 연속 채택이다.

김정일 10주기를 맞은 북한의 모습은 선대의 제삿날 대(代) 이은 충성을 다짐받는 세습왕조의 풍경과 다를 바 없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현주소는 21세기 지구에 벌어지는 초현실적 실재다. 때마침 채택된 유엔 대북 인권결의는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들춰내는 국제사회의 고발장이다. 결의문은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인도 범죄를 규탄하고 ‘가장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추가 제재를 고려하라고 권고했다.

사실 김정은은 집권 초만 해도 할아버지·아버지와는 다른 변화의 면모를 보이며 일말의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장마당을 활성화하고 대외교역을 확대하던 일부 조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핵·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대외 도발에 나서면서 북한은 더욱 강력한 제재조치에 직면했고 스스로를 고립의 길로 몰아갔다. 그 결과 북한 경제는 10년 전보다 쪼그라들었고 주민들은 이미 한때의 허망한 꿈에 한숨짓고 있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인민대중제일주의’ ‘우리국가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위민(爲民)의 지도자, 당당한 핵보유국 지도자로 자처하고 있다. 이런 속빈강정 같은 체제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는 없다. 아무리 수령 주변에 충성파로 철옹성을 쌓고 빈틈없는 감시·억압 장치를 갖췄다 한들 배곯은 주민의 원성을 이겨낼 수는 없다. 핵보검이니 전략로켓이니 내세운 핵미사일 물신(物神)숭배가 주민의 헛배를 채워줄 수도 없다.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은 지난 10년의 기회를 잃어버린 김정은이다. 그는 지금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앞두고 분야별 사업총화로 바쁘다. 늘 그랬듯 총화 결과로 나온 거창한 구호들이 그의 신년사를 장식할 것이고, 도발과 유화 사이를 오가는 요망한 대외정책도 드러낼 것이다. 김정은은 올해 내내 미국의 대화 손짓을 거부한 채 시간을 허비했다. 그 사이 체제 내부의 시한폭탄을 해제할 시간도 빠듯해지고 있다. 이제라도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김정은#북한#김정일 사망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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