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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특권에 따르는 의무와 희생 감수하라”… 지배층 향한 ‘일리아스’ 메시지[조대호 신화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사상]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입력 2021-12-17 03:00업데이트 2021-12-17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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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전쟁 이야기에는 적군과 아군, 선과 악, 승리와 패배가 있다. 독자나 관객의 마음은 승리하는 선한 편으로 끌리기 마련이다. 대다수 전쟁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움직인다. 하지만 그리스의 전쟁 서사시 ‘일리아스’에는 그런 이분법이 통하지 않는다. 그리스 군대의 내분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적대자들 사이의 화해로 끝나고, 죽인 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살육의 사슬 속에서 승패의 경계가 흐려진다. 무엇보다 그리스 편이 아니라 트로이아 편이 더 독자의 마음을 끈다는 점이 특별하다. 특히 헥토르와 사르페돈의 활약이 빛난다.》

사람의 온기를 가진 패배자

트로이아의 왕자이며 최고 지휘관인 헥토르는 그리스의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의 맞수다. ‘맞수’라고 해도, 둘의 대결 결과는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헥토르는 싸움에서 신의 아들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킬레우스에게 없는 것이 있다. 사람의 온기다. 헥토르는 단호하지만 포용력이 있고 전장의 영웅이면서 한 가정의 자애로운 가장이며, 명예를 바라지만 그가 추구하는 명예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에서 오는 것이다. 헥토르에게는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응시하면서도 위축되지 않는 용기와 의무감이 있다.

전투에 나가기 전 헥토르의 모습을 그린 카를 프리드리히 데클러 작 ‘안드로마케와 아스티아낙스에게 이별을 고하는 헥토르’(왼쪽 사진)와 사르페돈의 시신이 죽음의 신과 잠의 신에 의해 고향으로 옮겨지는 그림이 실린 기원전 515년 무렵 제작된 술동이. ‘일리아스’에서 헥토르와 사르페돈은 패배자가 아닌 자신의 의무를 다한 영웅으로 그려진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헥토르의 진면목은 아킬레우스와의 맞대결을 위해 성 밖으로 나가기 전, 아내와 어린 아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아내 안드로마케는 영원한 이별을 예감한다. 그녀는 애원한다. “제발, 성안에 머물고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당신의 아내를 과부로, 어린 아들을 고아로 만들지 마세요.” 불굴의 전사도 눈물짓는 아내의 간청은 뿌리치기 힘들다.

“난들 어찌 그러한 모든 일들이 염려가 안 되겠소, 여보./하지만 내가 만일 겁쟁이 모양 싸움터에서 물러선다면/트로이아인들과 옷자락을 끄는 트로이아 여인들을 대할 면목이/없을 것이오. 그리고 내 마음도 이를 용납하지 않소. 나는 언제나/용감하게 트로이아인들의 선두 대열에 서서 싸우며 아버지의/위대한 명성과 나 자신의 명성을 지키도록 배웠기 때문이오.”(천병희 역)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의무”


사르페돈은 헥토르와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그에게는 헥토르처럼 싸워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다. 그는 먼 남쪽 나라 뤼키아에서 원군을 이끌고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원군의 장수 사르페돈은 트로이아 군대의 어떤 장수보다 패기 있고 용맹하다. 전장에서 싸움을 주저하는 헥토르를 꾸짖을 정도이니까. “헥토르여! 그대가 전에 보여주었던 용기는 어디로 갔소?” 사르페돈을 빛나게 하는 것은 용맹과 무훈뿐이 아니다. 그를 진짜 돋보이게 하는 것은 영웅의 의무감이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 다투고 전장에서 물러난 뒤 트로이아 군대는 물밀듯이 그리스 군대를 공격한다. 그 선봉에 사르페돈이 있다. 그는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한 원군으로서 명분과 실리를 함께 챙기는 약삭빠른 인물이 아니다. 적당히 눈치를 보며 거리를 두는 것은 사르페돈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그는 동료 장수의 돌격을 재촉하며 이렇게 외친다.

“글라우코스여!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은 뤼키아에서/윗자리와 고기와 가득 찬 술잔으로 남달리 존경 받으며,/모든 이들이 우리를 신처럼 우러러보는가?/그리고 무엇 때문에 우리는 크산토스강의 제방 옆에/과수원과 밀밭이 딸린 아름답고 큰 영지를 차지하고 있는가?/그러니 우리는 지금 마땅히 뤼키아인들의 선두 대열에 서서/치열한 전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오.”

사르페돈에게 선봉에서의 싸움은 회피할 수 없는 공적인 의무다. 그런 의무 이행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고향 사람들은 그에게 높은 자리와 호사스러운 삶을 허락하고 과수원과 영지를 내어 주었겠나? 특혜에는 의무가 따른다. 사르페돈의 말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을 요약한다. 그래서 글라우코스도 그의 외침을 외면할 수 없다.

“적에게도 배우라”

어떻게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트로이아의 영웅들을 이렇듯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그려내었을까?

‘일리아스’가 ‘반지의 제왕’이나 ‘1917’ 같은 한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는 점부터 기억하자. 수백 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들이 새롭게 각색되어 하나의 작품이 탄생했다. 이 작품의 출현 배경에 관해서는 많은 문제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일리아스’에서 그려진 트로이아 전쟁은 실제로 일어났을까? 전쟁의 시점에서 500년 뒤에 살았던 시인이 어떻게 전쟁의 모습을 그토록 생생하게 그려냈을까? ‘일리아스’ 안에서 구전된 부분과 창작된 부분은 각각 어떤 것일까? 대답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자처럼 사나운 아킬레우스, 욕심 많은 아가멤논, 영리한 오디세우스 같은 그리스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달리, 갈등과 번민 속에서도 의무를 다하는 헥토르와 사르페돈의 이야기는 시인의 창작과 각색이 가장 많이 덧붙여진 부분이라는 점이다.

기원전 11세기 이후 그리스인들은 에게해를 건너 지금의 터키 서부지역에 정착했다. 이 새로운 정착지에서 일리아스가 탄생했다. 키오스와 스미르나(현 터키 이즈미르)는 호메로스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대다수의 문학작품이 그렇듯이 ‘일리아스’는 여흥을 위한 공연 작품이었고 최초의 청중은 귀족들이었다. 이들은 트로이아 원정의 주역들이 활약한 미케네 문명(기원전 1600년∼기원전 1200년)이 몰락한 뒤 바다를 건너 이오니아 지방(지금의 터키 서부)에 정착한 이주민들의 후예였다. 낯선 곳으로 이주한 그리스인들은 300년 넘게 곤궁한 ‘암흑시대’를 보낸 뒤 기원전 800년 무렵부터 번성기를 맞았다. 삶의 여유가 생기면 족보를 따지는 법. 이민자의 후예들도 선조들의 과거를 기억해 내려고 했다. ‘일리아스’는 그런 뿌리 찾기의 산물이었다. 필시 당대의 귀족들은 선조들의 승리와 영광을 기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메로스가 그들에게 보여준 것은 오히려 영웅들의 오만과 실수, 그로 인한 비극적 운명이었다. 그런 점에서 ‘일리아스’는 과거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경고였다. 눈먼 시인은 친구와 적, 선과 악, 승리와 패배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운명을 꿰뚫어 보았다. 구전 속 이야기에 트로이아 영웅들의 모습을 그려 넣을 때도 시인은 경고를 잊지 않았다. 적에게도 배우라! 특권에 대한 대가로 의무를 다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영웅들의 모습 속에 호메로스는 귀족들을 향한 대중의 바람을 담았을 것이다.

사르페돈과 헥토르는 전장에서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패배자가 아니라 의무를 다한 영웅으로 후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았다. 이들이 작품에서 뛰쳐나와 우리를 보면 뭐라고 말할까? 우리 사회에도 ‘귀족들’이 있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성장과 발전의 특혜를 누려 왔지만, 헥토르나 사르페돈을 찾기 힘들다. 아예 없을까, 보이지 않을 뿐인가? 성장 만능 사회의 온갖 질환들, 최고의 산재율과 밑바닥의 행복지수, ‘탄소배출 깡패국가’의 오명, 최저 출산율, 편 가르기와 저질 예능으로 전락한 정치를 보면서 그들은 책임과 의무를 느낄까?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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