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수용]‘요즘 노동’에 눈감은 대선후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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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노동이사제 찬성한 李-尹
플랫폼 비정규직 현실은 외면하나

홍수용 산업2부장
홍수용 산업2부장
처음에는 ‘몸 쓰는 일을 하면 다이어트라도 좀 되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김주영(가명) 씨가 4년 전 배달 플랫폼업체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분류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별다른 계기는 없었다. 하필 현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첫해 비정규직의 길로 들어선 이유를 물으니,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자유가 좋았다고 했다. 센터 내 정규직 직원이 안전화와 방한용 파카를 받는 것과 달리 김 씨 같은 일용직은 안전화만 받는다. 김 씨는 지금 누리는 플랫폼 노동의 자유가 그런 작은 차등쯤은 상쇄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유연한 근로를 특징으로 하는 ‘기그(Gig) 이코노미’ 세상에서 김 씨처럼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고용정보원이 추산한 지난해 플랫폼 노동자는 220만 명, 전체 취업자의 8.5%다. 수시로 콜을 받고 움직이는 거리의 무수한 단기 배달 종사자까지 포괄하는 플랫폼 노동의 규모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2022년까지 7500만 개의 직업이 사라지는 대신 1억3300만 개의 직업이 생길 것이라는 2018년 다보스포럼의 예측이 맞아들고 있다. 직업에 대한 취향 변화가 노동과 사회의 구조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변해도 여야 대선 후보의 노동 인식은 19세기 말 2차 산업혁명 이후 이어져온 정규직 중심의 세상에 머물러 있다. 노동자 1, 2명을 기업 의사결정에 참여토록 하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에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그 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2일 이 제도를 도입하자고 한 데 이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역시 이달 15일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 제도로 거수기라고 비판받는 사외이사 제도를 일신하는 효과가 생긴다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노동 귀족’이라고 비판받는 지금의 노조가 노동이사를 이사회에 보낸들 별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존 이사회가 기득권 집단이라면 이미 기득권이 된 노조가 메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현 정부 첫해인 2017년, 한 토론회에서 공공노조 간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때 ‘사회적 가치’ 항목을 따로 만들어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기관은 그 자체가 사회적 가치 구현이 목적인 조직이고 모든 평가는 그 가치 구현 정도를 점수로 매기는 것이다. 옥상옥(屋上屋) 주장이 거북하던 차에 그는 “이것이 정부 정책 방향에 맞는 것”이라고 부언했다. 노조 간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믿기 어려웠다. 공공기관이 노조에 포획된 지 오래다. 기득권 노조가 노동이사를 공공기관 이사회에 보내면 색깔과 무늬가 다른 거수기가 추가될 뿐이다. 대선 득표전략 때문에 기업이라는 배가 산으로 갈 판이다.

대선 후보들이 노동이사제 선물을 들고 노조에 눈도장 찍고 있지만 정작 플랫폼 노동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알고리즘과 별점을 통해 개개인을 통제하는 시스템에서 궁극적으로는 빅브러더의 감시가 플랫폼 노동의 자유를 옥죌 수 있다. 독립 계약만 존재하는 플랫폼에서 노동은 쓰고 버리는 소비재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디지털의 배신’) 대선후보 누구도 독점의 횡포와 혁신을 구별하는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표 계산이 서지 않아서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대로는 김주영 씨가 20년 정규직 생활 끝에 선택한 노동의 자유를 지키기 어렵다.

홍수용 산업2부장 legman@donga.com



#요즘 노동#플랫폼 비정규직#눈감은 대선후보#현실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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