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의 ‘한국통사’가 100년 전 하와이서 발행된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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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1945년 출간된 책 44권, 한국학 사서 이효경씨가 소개
‘워싱턴대학의 한국 책들’ 펴내
“일제의 감시 피해 美서 발행… 우리 문화 명맥 잇고자 한 증거”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정신이라. 정신이 보존돼 멸망치 아니하면 형상은 자연히 다시 살아남을지라.”

상하이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박은식(1859∼1925)이 고종이 즉위한 1863년부터 경술국치 직후인 1911년까지 한국 근대사를 다룬 ‘한국통사(韓國痛史·사진)’ 서문 일부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나라를 되찾는 길이라고 믿었던 그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하던 1915년 한문본으로 이 책을 냈다. 초판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1917년 미국 하와이에서 발행된 이 책의 한글본이 100여 년이 지나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 동아시아도서관에서 발견됐다.

14일 발간된 ‘워싱턴대학의 한국 책들’(유유)은 워싱턴대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사서로 20여 년을 일한 저자 이효경 씨(50)가 도서관 소장 한국 자료 중 1900∼1945년 출간된 책 44권을 소개한 책이다. 동아시아도서관은 북미 지역 14개 한국학 도서관 중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약 20만 종) 다음으로 많은 한국 자료를 소장(약 15만 종)하고 있다. 44권 중 5권은 출판의 자유를 박탈한 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를 피해 미국에서 발행된 책이다. 36권은 한국에서, 3권은 일본에서 각각 발행됐다. 이 씨는 “오랜 기간 도서관 서고에서 누군가 찾아 주기만을 묵묵히 기다린 책들이 드디어 독자를 만나게 됐다”고 전했다.

도서관은 독립운동가였지만 친일파로 돌아선 윤치호(1866∼1945)의 ‘우순소리’도 소장하고 있다. 제목이 우스운 이야기라는 뜻인 이 책은 윤치호가 71편의 우화를 재창작해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았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는 우화를 전하며 “백성을 죽여 가며 재산을 한 번에 빼앗다가 필경 재물과 백성과 나라를 다 잃어버린 사람도 적지 않다”며 국민을 수탈하는 일제와 매국노를 비판했다. 이 책은 1908년 국내에 출간됐다 금서 처분을 받았고, 1910년 하와이에서 재출간됐다.

이 씨는 “일제 무단통치기 해외에서 출간된 책들은 일제의 눈을 피해 우리 문화의 명맥을 잇고자 안간힘을 쓴 증거”라며 “광복 이후에 나온 책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박은식#한국통사#하와이서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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