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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박선희]인사철 젊은 임원 전성시대, 유행 넘은 ‘진짜 혁신’ 되길

입력 2021-12-13 03:00업데이트 2021-12-1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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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산업2부 차장
지금으로부터 2년 전, 한 대기업에서 1980년대생 최연소 임원을 발탁했다는 뉴스가 종일 화제가 됐던 때가 있었다. 또래 직장인 단체 대화방도 충격으로 떠들썩했었다. “일은 아랫것들이, 광(光) 파는 건 임원들이 하는 것 아니었던가. 어떻게 그 연차에 벌써 광을 팔고 다닌 건가” “퇴짜 맞은 임원 신년사 고치고 있던 내 손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같은 반응이 쏟아졌었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올해 말도 주요 기업들이 줄지어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충격적이었던 젊은 임원이나 독한 세대교체는 올해 들어서는 혁신 인사의 필수 코드가 됐다. 기업들의 선택은 점점 더 과감해지고 있다. 네이버에서는 81년생 여성 대표이사가 탄생했다. 사장단을 모두 교체한 대대적 인사를 감행한 삼성은 30대 임원과 40대 부사장을 대거 발탁했다. SK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40대 사장을 임명했고, LG그룹 인사에서도 신규 임원 중 40대가 62%를 차지했다.

기업들이 젊은 임원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는 연공서열 타파, 조직문화 쇄신, 차세대 성장 동력 마련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주요 대기업의 3∼4세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젊은 오너’에 맞춰 임원 연령대가 전반적으로 하향 조정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30대 임원, 40대 사장단’은 부인할 수 없는 조류가 됐다. ‘최연소’ 타이틀 하나쯤 없이 발표되는 인사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국내 기업들은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편이다. 화제가 되는 좋은 사례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한다. 한때 팀제 전환이나 식스시그마 도입이 유행했던 것처럼 얼마 전까지 다들 수평적 조직문화와 애자일 경영기법을 적용한다고 바빴다. 요즘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이 대세다. 조직문화를 쇄신하고 MZ세대와의 소통에서 가교 역할을 할 젊은 임원을 두는 것 역시 크게는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보이기도 한다. 연령대를 파격적으로 낮추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대비한 참신한 포석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인사 그 자체가 유연한 기업 문화나 혁신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 어떤 베스트 프랙티스도 일률적으로 적용할 땐 효과가 없다. 보여 주기나 흉내 내기에 그친다면 더 그렇다. IT업계에서 ‘귤화위지(橘化爲枳·귤이 탱자가 된다)’란 말에 빗대 “실리콘밸리의 귤이 판교에 오면 탱자가 된다”는 자조가 떠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현실에 맞는 정교한 적용이 있어야 효과를 본다. 인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젊은 임원을 기용한 기업들은 저마다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잡음이 불거졌던 곳도, 급변한 글로벌 환경에 맞춘 도약이 필요한 곳도 있다. 인사로 표출된 쇄신에 대한 갈망을 이들이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연말에 연이어 전해지는 ‘젊은 인사’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우리 기업들의 ‘진짜 혁신’으로 거듭나기를 바라 본다.


박선희 산업2부 차장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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