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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이은우]“반도체가 석유보다 중요”

입력 2021-12-11 03:00업데이트 2021-12-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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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부장관이 9일(현지 시간) “반도체가 석유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가 없다면 세계 어디에서든 상품 생산도, 기업 운영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 석유에서 반도체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20세기 이후 석유는 전쟁의 불씨였다. 미국은 석유 지배권을 놓고 전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슈퍼 파워’를 놓지 않으려는 미국에 반도체 전쟁은 당연한 수순이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레이브스 부장관은 “적국이 우리에게 반도체를 주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반도체 공급을 중국에 의존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미국은 ‘파트너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나섰다. 내년 아시아 국가들과 새로운 경제 기본 협정을 추진하는데, 공급망과 수출 통제를 다룰 예정이다. 중국을 고립시키는 ‘동맹국 동원령’인 셈이다. 미국은 자국에 공장을 짓도록 압박한 데 이어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고객정보까지 받아갔다. 우리 기업이 받을 압박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미중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 역량이 탄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삼성전자가 3분기 미국 인텔을 누르고 글로벌 반도체 매출 1위를 차지한 건 반가운 일이다. 메모리 수요가 늘었기 때문인데, SK하이닉스도 3위에 올랐다. 하지만 경쟁 기업들이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고 있고, 초미세공정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업체가 독점하고 있다. 비메모리 분야에선 한국 점유율이 10년째 3% 선에 그치고 있다. 매출 1위인데도 생존 위기라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반도체특별법이 1일 국회 상임위 소위를 통과했다. 논의 9개월 만에 첫 관문을 넘었지만 기획재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등에 반대하고 있어 본회의를 통과할지는 불투명하다. 소위를 통과한 법안도 기업들이 요청한 알맹이가 빠졌다.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려주거나, 주52시간제를 탄력 적용하는 방안이 배제됐다. 이렇게 느긋해서는 반도체 전쟁에서 버티기 어렵다.

▷반도체는 승자가 독식하는 시장이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1위가 된 것은 과감한 투자로 ‘치킨 게임’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이런 성과가 미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인공지능(AI) 특화용 등 차세대 반도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자칫 투자의 때를 놓치면 만회할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을 압박하면서도 협력 관계를 강조한다. 한국과 틀어져서는 공급망 전쟁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 입지가 흔들리는 순간, 한국은 두 나라 사이에서 설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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