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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이상훈]‘삼성이 기본소득 말해라’ 우려되는 대선주자 기업관

입력 2021-12-09 03:00업데이트 2021-12-0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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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산업1부 차장
“삼성이나 이런 데서 기본소득을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떻겠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도 이야기를 했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최근 발언에서는 정치인들이 기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정치권이 기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드러난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고 있다’ 정도로 비판할 수준이 아니다.

시장경제 체제의 한 축으로 존중해 줘야 한다는, 기업은 고용을 하고 세금을 내며 부를 창출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과연 갖고 있긴 한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언제든 동원 가능하고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상대 정도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게 무리가 아니다. 국민들로서는 ‘도대체 정치권은 기업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은 이윤을 목적으로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제 주체다. 경제의 3대 주체로 기업 가계 정부를 꼽지만, 부를 창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기업이 유일하다. 기업이 돈을 벌어야 가계에 임금을 지급하고 정부에 세금을 낼 수 있다. 근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선진국은 곧 강하고 튼튼한 기업이 많은 나라라는 뜻으로 통한다.

돈을 벌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다. 투자를 통해 설비를 갖추고 기술을 쌓아 놔야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경제 개발 초기에 아무것도 없을 때는 정부 주도로 도로 수도 전기 등 인프라에 투자하는 게 중요하지만, 선진국으로 가려면 기업을 비롯한 민간이 주도하는 설비 및 연구개발(R&D) 투자가 절대적으로 중요해진다. 정부와 정치권이 얼마나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고 유도하는지에 따라 경제 운명이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한국의 투자가 갈수록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 축적 수준을 보여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생산자산 축적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축적 규모(7484조 원)는 2000년 대비 305% 늘어 33개 회원국 중 증가율이 5번째로 높았지만 2010년 이후로 따져보면 증가율은 64%로 크게 둔화됐다. 호주(55%), 이스라엘(54%), 캐나다(47%) 등 최근 경제에 활력이 도는 선진국들이 투자에 속도를 내며 곳간을 부지런히 채우고 있다. 한국은 2018, 2019년 2년 연속 설비투자가 마이너스였다. 규제는 늘고 기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이 바뀌지 않는데 투자가 늘어나면 그게 신기한 일이다.

가뜩이나 미중 갈등에 치이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한국 기업들의 투자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생존을 담보로 변화의 최전선에 뛰어든 기업을 향해 어떻게 경제 안보를 지키고 투자를 유도할지 정치권이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외교·경제 정책은 이미 그렇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업 활동과 아무 상관없는 설익은 공약을 ‘한번 연구해 보라’며 툭 던지는 모습에 ‘시원하다’ ‘통쾌하다’며 반길 유권자는 많지 않다. 미국에서는 자국에 투자해 주는 삼성에 “생큐”를 다섯 번 외쳐 주는데 한국에서는 언제까지 기업이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지 우려된다.

이상훈 산업1부 차장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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