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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겨울나기의 시간[동아광장/김금희]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입력 2021-12-08 03:00업데이트 2021-12-0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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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인생의 방학’
“겨울을 삶 안으로 받아들이는 법” 배워야
상처에 잠식되지 않고, 이 시간을 건너길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윤성희 작가의 ‘날마다 만우절’에는 인생의 방학을 맞이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이들이 아니고 어른들 얘기다. 다니던 사학재단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직을 한 병자 씨는 마지막 퇴근길에 자기 자신을 위한 꽃다발을 사고 가족의 슬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돌림자가 든 이름을 버리고 개명할 계획도 짠다. 하지만 그때 그가 버리려고 하는 바로 그 이름, 병자 씨를 부르며 과거의 누군가가 전화를 건다. 병자 씨의 불우한 집안 사정을 들먹이며 예비 시부모가 퇴짜를 놓았을 때 나서서 변호하지 않고 슬그머니 이별을 선택해버린 전 애인이다.

‘날마다 만우절’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그간 대체로 소설화되지 않은 나이대의 여성들이라 반가웠다. 주로 가족제도 내의 ‘엄마’로 등장하거나, 젊은 세대들의 오늘을 되짚기 위한 배경 정도로 등장했던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인생의 한 시절을 열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시장에서도 서서히 물러나야 하는 시기에 이들은 과제를 마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여전히 세상에 대해 풀지 못한 의문이 있고 그래서 끊임없이 어딘가를 서성여야 하는 사람이 되어 삶의 또 다른 모퉁이를 돈다. 애정과 보살핌으로 유지되었다고 생각했던 유년이 알고 보면 서로 간의 상처와 반목으로, 때론 폭력으로 이루어졌음을 목도해야 하는 과제가 놓이고, 지금 내가 현재 이룬 가족 역시 그런 ‘블랙홀’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배워가야 하는 숙제도 있다. 그리고 죽음이 가까워져 있다. 인생의 방학에는 바로 그런 슬픔이 몰려들며 스스로 그 상실감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시기의 분명한 회복력도 놓치지 않는다. 방학은 잠시 일상에서 놓여나 가능한 한 가장 느리고 길게 놀이시간을 갖는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품집에는 공기놀이나 킥보드, 얼음땡 같은 놀이들이 매번 등장하는데, 인물들이 그를 통해 자신이 가장 충만했던 과거의 어느 시절과 조우하는 장면은 상처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는 이의 아름답고 눈물겨운 노력들이 된다.

겨울이 되면서 나 역시 어느 정도의 침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원고들을 거의 쓰지 못한 것, 젊다거나 새롭다거나 하는 미덕으로 더 이상 평가받기 어려운 경력이 되었다는 것,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점점 더 침체되는 출판 시장을 바라봐야 하는 것, 내년이면 부모님 모두 일흔이 넘는 연세라는 것, 곧 내가 언제 혼자 남겨져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라는 것. 언젠가부터는 그런 미래가 아주 염세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사람들과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헤어져 돌아섰는데, 집으로 혼자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많은 수다를 떨고 웃었는데 왜 마음이 이렇게 쓸쓸할까, 얼음처럼 차디찬 비관과 슬픔이 남아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읽게 된 책 중에는 캐서린 메이의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도 있었다. 원제가 ‘윈터링(Wintering)’인 이 책은 인생의 “휴한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세이다. 작가는 누구나 한 번쯤 겨울을 겪고, 때론 겨울을 반복해서 겪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런 겨울은 질병이나 사별, 아이의 출생 같은 큰 사건으로 찾아올 수도 있고 치욕이나 실패, 인간관계의 종결, 가중되는 돌봄의 부담에서도 온다. 이렇듯 우리는 인생의 겨울을 불가피하게 맞닥뜨리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지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겨울을 무시하거나 없애버리려는 시도 대신 “겨울을 삶 안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돌이켜보면 식물과 동물은 겨울과 싸우지 않는다고, 겨울이 오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며 여름에 살아온 방식 그대로 살지 않는다고 작가가 지적할 때 나는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눈이 밝아졌다.

이제 윈터링, 겨울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 시간에 나는 윤성희 소설에서 만난 이들을 자주 떠올릴 것 같다. 전 애인의 뒤늦은 구애에 “그러지 마요”라고 일축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과거의 상처에서 구원했던 병자 씨를, 킥보드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해 누워 있으면서도 자신을 발견한 청년에게 지금 자신은 얼음땡을 하고 있으니 “땡”이라고 말해 달라 농담하던 ‘나’를. 그들 모두는 지금 가지치기를 하고 조용히 겨울을 견디려는 가로수들, 깃털을 새로 내고 찬 공기를 날 준비를 하는 창밖의 새들을 닮았다. 그들이 겨울을 건너가고 당연히 우리도 그럴 것이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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