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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유럽 사람이 왜 거기서 나와?[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입력 2021-12-06 03:00업데이트 2021-12-06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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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중국의 ‘천하’ 이데올로기
관세음보살 그림과 찬양시를 모은 책 ‘관세음보살자용오십삼현’ 속의 유럽인 복장을 한 관세음보살. 사진 출처 수거(書格)
최근 열린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는 이른바 역사 결의를 통과시켰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초석을 놓는 당대회에서 첫 번째 역사 결의를 채택한 적이 있고, 문화혁명 이후 새로운 중국을 천명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역사 결의를 통과시킨 적이 있으니, 이것이 세 번째 역사 결의다. 이런 결의들은 중국이 세계와 역사 속에서 차지하고자 하는 위상을 표방한다. 중국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책에 대한 논의를 넘어 정책 너머에 있는 역사관과 세계관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역사관이나 세계관에 대한 이해는 간편한 요약으로 가능하지 않다. 심층적인 이해로 나아가기 위해 일단 오래된 그림책을 펼쳐 보자. ‘관세음보살자용오십삼현(觀世音菩薩慈容五十三現)’은 관세음보살 그림 53종과 찬양시를 모은 그림책이다. 관세음 또는 관음은 산스크리트어 아발로키테슈와라(Avalokitepvara)의 한역이다. 아박로지저습벌라(阿縛盧枳低濕伐羅)로 음역(音譯)되기도 하는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려는 자비심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림책 제목에 ‘자용(慈容·자비로운 모습)’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그 53개의 그림을 하나하나 넘기다 보면, 맨 마지막에 갑자기 유럽 사람, 아니 유럽 사람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한 관세음보살이 나타난다. 이 모습은 혹시 명나라 때 활동한 선교사의 모습은 아닌가, 혹은 예수의 모습은 아닌가 하는 추정이 있었고, 그러한 추정을 근거로 이 그림은 명나라 말기에 그려졌다고 한동안 추정되었다. 그러나 대만의 연구자 고예철(高睿哲)은 그 관세음보살 그림이 17세기 프랑스 초상화가 필리프 드 샹파뉴(Philippe de Champaigne)가 그린 루이 13세의 모습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에 따라 ‘관세음보살자용오십삼현’의 최초 제작 시기는 청나라 초기로 비정되었다. 현재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루이 13세 그림은 루이 13세의 부인인 ‘오스트리아의 앤(Anne of Austria)’이 혈육인 스페인의 필리프 4세(King Philip IV)에게 보낸 초상화를 모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세기 프랑스 초상화가 필리프 드 샹파뉴가 그린 루이 13세의 모습. 사진 출처 프라도 미술관 홈페이지


종교화 영역에서만 유럽 사람 이미지가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치적 성격을 띤 회화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청나라 황제였던 옹정제(雍正帝) 초상화 연작을 보자. 이 초상화 연작에서 옹정제는 페르시안 무사, 튀르크계 왕자, 도가의 술사, 티베트 승려 등 끊임없이 다른 민족의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어 드러낸다. 그러다가 마침내 서양식 가발을 쓰고 유럽인의 복장을 하고 나타나기까지 한다.

관세음보살이나 옹정제는 왜 이토록 분주하게 모습을 바꾸어가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일까? 그리고 변화하는 그 모습 중에는 왜 유럽인 모습까지 포함되어 있을까? 관세음보살이나 옹정제 둘 다 어느 곳에나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법화경(法華經)’ 안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은 별도로 ‘관음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거기에는 “온 세상 모든 국토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이 없다(十方諸國土 無刹不現身)”라는 문장이 실려 있다. 즉 관세음보살은 모든 곳에 편재하여 중생들을 보살피는 존재이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각 지역과 맥락에 걸맞은 모습으로 다양하게 그려져 왔다.

청나라 황제 옹정제(재위 1722∼1735)가 서양식 가발에 유럽인 복장을 하고 등장한 초상화. 옹정제는 초상화 연작에서 페르시안 무사, 티베트 승려 등 각기 다른 민족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그 점에 관한 한 중국 황제도 마찬가지다. 중국 황제는 자신을 일국의 왕이라고 간주하지 않고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라고 생각한다. 관세음보살과 마찬가지로 문명 세계 전체에 편재하여 중생들을 다스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명나라 황제들은 청나라 옹정제처럼 다양한 민족의 외양을 띤 인물 초상화를 남기지 않았다. 옹정제가 이처럼 다민족을 포괄하는 변신의 귀재로 그려진 데는 그 나름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청나라는 그 전의 명나라에 비해 영토를 두 배로 확장했고, 그 과정에서 훨씬 다양한 민족들을 영토 안에 포괄하게 되었다. 즉, 청나라 황제는 훨씬 더 다양한 신민들을 다스려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야 했고, 그 과제는 오늘날에도 소수민족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일국의 왕이 아니라 천하를 다스리는 존재라는 관념이 불교나 중국만의 특성은 아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보편 군주라는 이념은 유럽에도 존재했다. 한 명의 군주가 모든 곳을 다스린다는 취지의 보편 군주정(monarchia universalis) 이념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만신창이가 된 신성로마제국이 바로 이 보편 군주정 이념을 즐겨 내세웠다. 유럽이 전쟁으로 얼룩지고 파편화되던 시기에 바로 이 보편 군주정 이념이 유행했던 것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를 표방하건, 보편 군주를 표방하건 간에, 그것이 곧 통치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는 증거는 아니다. 어쩌면 취약할수록 그런 권력의 과시가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 광대한 지역과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하면 할수록 더 많은 협상의 필요가 생기고, 그 협상을 위해서는 무력뿐 아니라 이념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서, 권력자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려 들기보다는 자신을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마치 관세음보살이나 옹정제처럼.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kimyoungm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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