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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제주 바닷가에 박힌 검은 보석, 도대불[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0〉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입력 2021-12-02 03:00업데이트 2021-12-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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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어둠이 깔리면 어김없이 돌탑 꼭대기에 불 밝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불빛은 닿을 듯 말 듯 바다로 향했다. 물고기 잡으러 나갔던 어민들은 칠흑 같은 바다에서 희미한 빛을 따라 포구로 돌아왔다. 불빛을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돌을 쌓았는데 제주민은 도대불, 등명대, 갯불이라 불렀다. 빛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돌탑 위 호롱불은 하찮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깃불이 귀하던 시절, 암흑의 밤바다에서 한줄기 빛은 생명의 끈이었다. 도대불은 1915년부터 1960년대까지 제주도에서 이용한 근대식 등대다. 현대식 등대로 완전히 대체되기 전까지 포구 위치를 알리는 항로표지 역할을 했다.

한반도에서 등대 건설은 일본 제국주의와 관련된다.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인천 팔미도등대(1903년)를 시작으로 부도등대(1904년), 거문도등대(1905년), 울기등대(1906년) 등을 줄줄이 만들었다. 제주도 첫 등대는 1906년 3월 1일에 점등한 우도등대다. 이후 마라도등대(1915년), 산지등대(1916년)가 제주 바다를 비췄다. 특이한 것은 현대식 등대와 도대불이 동시대에 운영됐다는 점이다. 초창기 등대가 일제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도대불은 어촌민들에 의해 축조됐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쌓아서 만들었기에 민간 등대라 할 수 있다. ‘돛대처럼 높이 켠 불’이라는 뜻의 ‘돛대불’에서 유래했다는 설, ‘뱃길을 밝히는(道臺) 불’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대의 일본어 발음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 어원은 명확하지 않다. 관솔, 생선 기름을 사용한 호롱, 석유를 담은 등피 등을 이용해 불을 지폈다. 해질 녘 뱃일 나가는 어부가 밝히거나 관리하는 사람을 따로 두기도 했다. 탑의 형태는 현무암을 거칠게 다듬어서 쌓았는데 원뿔형, 원통형, 상자형, 마름모형 등 다양하다.

항만시설 확장과 해안도로 건설 과정에서 도대불은 사라지거나 훼손됐다. 현재 17곳에 도대불이 남아 있다. 그중 보존상태가 양호한 6기(북촌리, 고산리, 대포동, 보목동, 김녕리, 우도)의 도대불이 ‘제주도 근현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1호(2021년 7월)’로 지정됐다. 제주 근현대 어업문화 및 해양생활을 살필 수 있는 문화자원인 데다 제주도에만 남아 있다는 희소성을 인정받았다. 가장 오래된 도대불은 1915년 축조한 북촌리도대불이다. 우도도대불은 만든 방식이 재밌다. 조선시대에 쌓은 방사탑이 신앙 기능을 상실하자, 1962년 10월 주민들이 탑 상단을 개조했다. 우도는 일본으로 가는 길목이라 등대가 일찌감치 건립돼 있었다. 등대는 일본을 마주하고 있고, 도대불은 제주 본섬을 바라보고 있다.

어선에서 포구가 가장 잘 보이는 언덕이나 빌레(너럭바위) 혹은 포구 내에 도대불을 쌓았으므로 대체로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틈날 때마다 해안 길을 걸으며 도대불 옆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곤 한다. 무사귀환을 바라며 돌탑을 쌓고 불을 밝히던 이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올레길 걷는 인파와 바닷가를 찾는 관광객들은 무심히 지나친다. 생명의 빛을 바다로 전하던 도대불은 제주 해변의 검은 보석이다.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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