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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IT/의학

‘환자 신분증 확인 의무화’ 시행前 충분한 논의 거쳐야

입력 2021-12-02 03:00업데이트 2021-12-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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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황지환 대한의사협회 의무자문위원
“100번도 더 온 단골 환자인데 신분증이 필요하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요.”(재진료 환자)

“이제는 신분증을 꼭 내셔야 해요. 안 그러면 진료를 받을 수 없어요.”(동네 의원 원장)

앞으로 우리 주위의 동네 의원에서 자주 오갈 수 있는 대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요양기관, 즉 병의원이 내원 환자 모두의 신분증을 확인하도록 강제하는 법을 발의하고 한 달 만에 마치 전광석화처럼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병의원은 환자를 진료할 때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으로 본인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규제에 대해 제대로 된 국민 홍보가 없었다는 점이다. 또 의료계와 사전에 충분한 시범사업을 하지도 않고 갑자기 이뤄진 상황이라 앞으로 환자와 의사 사이에 갈등 아닌 갈등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분증 의무 확인의 배경에는 타인의 건강보험을 도용해 부정하게 건강보험을 이용하는 ‘무자격자’ 문제가 가끔씩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병의원에 환자 신분증을 매번 강제로 확인하는 의무를 지우려고 해 왔다.

일부에서는 병의원 신분증 확인이 왜 문제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현장에서 매일 진료를 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노인 등 취약 계층에 대한 배려를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도시에서 진료를 하고 있지만 환자의 특성상 노인, 장애인 등이 자주 방문한다. 신분증, 신용카드, 지갑, 심지어 휴대전화를 지참하지 않거나 사용법을 모르는 환자가 적지 않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가 평소 다니던 단골 병의원에 관절염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신분증을 집에 놓고 와 다시 집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도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다.

남의 건강보험을 몰래 도용하는 무자격자는 당연히 엄벌에 처해야 한다. 여기엔 의사들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 무자격자를 잡기 위해 병의원과 환자를 갈등으로 밀어 넣는 법안에 대해선 강력히 반대한다. 법안 하위 규정에라도 신분증 의무 확인 대상을 초진 환자로 국한시키는 차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100번 넘게 내원한 재진 환자에게 올 때마다 신분증이나 휴대전화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건 불필요한 마찰 소지가 크다.

또 신분증 의무 확인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려면 정부와 건보공단이 ‘병의원을 방문할 때는 신분증을 꼭 지참하세요’ 등의 메시지를 전하는 홍보 활동과 캠페인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의사들은 환자들이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집에 되돌아가는 불편이 생기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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