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 “버거운 십자가 내려놓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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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대교구장 이임미사

염수정 추기경이 30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이임 감사 미사를 봉헌한 뒤 참석자들의 인사를 받으며 성당을 나서고 있다(위쪽 사진). 미사 중 강론하는 염 추기경. 사진공동취재단
염수정 추기경이 30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이임 감사 미사를 봉헌한 뒤 참석자들의 인사를 받으며 성당을 나서고 있다(위쪽 사진). 미사 중 강론하는 염 추기경. 사진공동취재단
“사제로 51년, 주교로 20년을 살아왔다. 9년 반은 교구장이라는, 부족한 제게는 너무 버거운 십자가를 지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당부하신 양 냄새 나는 착한 목자로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치려고 했지만 능력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30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천주교서울대교구장 이임 감사 미사 중 염수정 추기경(78)이 남긴 말이다. ‘하느님 뜻에 따라 살고자 노력했고, 부족하지만 열심히 살았던 사제로 기억해주면 좋겠다.’ 가톨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염 추기경의 소망대로 그는 부드러운 미소와 겸손함으로 사제와 신자들을 지켜주던 신앙의 울타리였다.

1943년 경기 안성의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1970년 사제품을 받은 뒤 2002년 주교로 서품됐다. 2012년 정진석 추기경의 뒤를 이어 제13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고, 2014년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 미사를 주례할 때 교황과 함께 미사를 공동 집전했다. 손병선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장은 “추기경의 사목 여정과 순례의 시간이 어제의 열매이자 내일의 씨앗이 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사제와 신자 등 700여 명이 명동대성당과 코스토홀에서 이날 미사를 지켜봤다. 후임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를 비롯해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 전임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등이 참석했다.

미사에 이은 환송식에서는 염 추기경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신임 교구장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했다. 교구의 젊은 사제들은 염 추기경의 ‘애창곡’으로 알려진 성가 ‘나를 따르라’를 열창했다. 30일은 염 추기경의 세례명인 안드레아 성인을 기념하는 영명축일(靈名祝日)로 그 의미를 더했다. 염 추기경은 환송식 답사에서 “안드레아 성인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을 따라 나선 첫 사도 중 한 분이고, 오늘은 어머니 기일이기도 해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날”이라며 “이날 이임 미사를 봉헌하고 새 교구장님이 오시게 된 것은 성령의 섭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의 유머로 대성당 내에서는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여러분, 제 전화번호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바뀌면 장사가 안돼요. 농담입니다.”

이날 미사 뒤 염 추기경은 명동 주교관을 떠나 사제의 꿈을 키웠던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 내 주교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교회법상 추기경은 종신직이며 염 추기경의 교황 선출권은 만 80세까지 유지된다. 후임인 제14대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의 착좌(着座) 미사는 8일 오후 2시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장 이임미사#환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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