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아이 학습의지 꺾는 과잉 교육[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입력 2021-12-01 03:00업데이트 2021-12-01 03:04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142〉 과잉육아의 문제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요즘 아이들 교육을 보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1학년인데 일주일 스케줄이 가득 차 있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이런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아이들은 그 스케줄 안에서 대충 해치우고, 건성으로 듣는 게 익숙해진다. 어떻게든 놀 궁리만 하게 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간과 돈을 들여 아이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는 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아이의 모습에 참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엉키면서 마음이 영 불편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더 빨리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아이에게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조급해지고 성급해진다. 그 급한 마음은 감정을 잘 처리해 표현하는 것을 막는다. 그러다 보면 좋은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싶다는 처음 의도와 달리 아이에게 욱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욱’에는 늘 성급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이가 어떤 동기를 스스로 갖기 전에, 부모가 미리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정 부분 필요한 것도 있지만 그런 면이 지나친 것 같다. 밥도 배가 고파야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 배도 안 고픈데 자꾸 떠먹이면 먹기가 싫어진다. 아예 ‘밥’이 싫어지기도 한다. 지금은 육아의 모든 것이 그렇게 과하다. 그래서 부모들이 더 바빠지고 더 힘들어지고 더 욱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각종 교육기관은 물론 어떤 교육 전문가들은 몇 살에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또 한 번 가르치면 어디까지는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뭐든 가르쳐도 되지만 아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한다. 마치 무슨 의무교육처럼 몇 살 때는 어떤 학원에 보내고, 어느 단계까지는 마스터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과잉 교육’이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면서 체르니를 하나 더 떼는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할까.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면 재미있을 때까지 가르치면 된다. 간단한 곡 하나 정도 칠 수 있으면 된다. 싫어하는데 7, 8년 붙잡고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수영도 그렇다. 물에 안 빠지려면 수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수영을 하면 물놀이 가서도 더 재밌다. 그 정도면 된다. 추운 날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수영장에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부모 욕심 빼고 아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주었으면 한다.

학원을 보내든, 박물관에 찾아가든 좀 지나칠 때가 있다. 모든 정보는 쉴 때 뇌에 저장되기 때문에 반드시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쉬는 시간 없이 아이를 돌리면 아이들은 짬만 나면 놀고 싶어 한다. 배우는 과정이 업무, 과제, 숙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쉬고만 싶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작 정말 배워야 할 때 배우는 자체가 싫어질 수도 있다. 또한 자기 주도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오래 지속해야 하는 공부를 버티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과잉 교육이 아이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분들은 시켜 봐야 재능을 발견한다고도 한다. 맞는 말이다. 다른 아이들도 하는 것들은 조금씩 시켜 봐도 된다. 하지만 정도를 잘 지켜야 한다. 억지로 시켜서는 안 된다.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트를 타는 동안 너무 많은 아이들이 빙판으로 끌려 나왔다.

오래전 일이지만 프랑스 파리에 일주일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 거의 매일 루브르 박물관에 갔었다. 한국 관광객이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 관광객은 항상 ‘모나리자’ 작품 앞에 모여 있었다. 모여서 사진을 찍고는 금세 이동했다. 그중 어떤 엄마가 아이에게 “야, 이게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야. 눈썹 없지? 확인했지? 다음!” 이렇게 말했다. 장소도 넓고 봐야 할 그림도 많고, 다른 일정도 있으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의 그림을 꼭 모두 봐야 할까? 한 그림이라도 가만히, 한참, 충분히 감상할 시간을 가지면 안 되는 걸까? 설명 없이 혼자 감상한 아이가 “이건 왜 그랬을까요?” 묻고, 부모가 아이의 생각을 들으며 시대 배경도 얘기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 엄마가 많이 보여 주는 것보다 ‘이것이 아이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를 먼저 생각했다면, 아이는 작품을 감상하며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 매우 선한 의도고, 그 마음이 사랑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과해지면 그것도 일종의 욕심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늘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아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자꾸만 불편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욱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면, 나의 육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내 육아에 너무 과한 면은 없는지, 그 안에 나의 욕심이 없는지 말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