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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바람 부는 날[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23〉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1-11-27 03:00업데이트 2021-11-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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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마른 열매와
몇 잎의 낡은 잎새만을 보면서
오래 오래
기다려 보았나
몇 개의 마른 열매와
몇 잎의 낡은 잎새로
세상에 매달려 보았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바람에 시달려 보았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바람이 되어 스친 것들을
잊어 보았나
삶이 소중한 만큼
삶이 고통스러운 만큼
몇 개의 마른 열매와
몇 개의 낡은 잎새를
사랑해 보았나

윤강로(1938∼)

‘감응’이라는 말은 어떤 대상을 만난 결과, 우리 마음이 따라 변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 만나면 변하기도 하겠지’ 싶지만 시에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시는 감응을 마법같이 대단한 힘으로 보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시인은 오롯이 저 혼자서 시를 빚어내지는 못한다. 오늘 만난 타인, 말, 장면, 심지어 지나가는 바람마저 시인을 흔든다. 흔들어서 무엇인가 변화하게 한다. 감응하는 자이기 때문에 시인은 비로소 시인이 된다.

이 시를 보면 ‘감응’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시인은 몇 개의 마른 열매와 낡은 잎새를 바라보고 있다. 그저 눈으로 만났을 뿐이다. 만지지도 않았고 소유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바깥의 것들을 눈에 담으면서 시인은 그것에 감응한다. 깊게 감응한 끝에 시인은 열매가 되고, 또한 낡은 잎새는 시인이 된다.

힘겹게 매달려 곧 떨어질 열매가 꼭 자신 같다고 생각한다. 바람에 시달리면서 아슬아슬 붙어 있는 잎사귀가 꼭 우리 삶 같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그것들을 이해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 자, 이것이 인간과 잎새의 감응이다. 이런 감응이 왜 마법 같은가. 시인은 타자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자기 자신 안에서 타자를 보면서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은 상승하여 넓어진다. 이 시의 끝을 보라. 시인은 잎새처럼 보잘것없는 자기 인생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시를 다 읽은 찰나, 마음에 무엇인가 꿈틀했을까. 바로 그거다. 그것이 바로 ‘감응’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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