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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대장동 배임 공범’ 정영학을 범죄신고자로 규정한 검찰[광화문에서/황형준]

입력 2021-11-27 03:00업데이트 2021-11-2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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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준 사회부 차장
“조직을 탈퇴한 조직폭력배 행동대원이 두목 등에 대한 비리를 신고할 때 적용한 적은 있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이 22일 천화동인 5호 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를 불구속 기소하며 정 회계사를 특정범죄신고자로 규정하자 검찰 내부에선 이 같은 반응이 나왔다.

검찰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정 회계사가 수사 초기 검찰에 자진 출석해 관련자들의 대화 녹취록을 제공했다”며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구속 기소하면서도 정 회계사에겐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수사팀의 이 같은 조치는 ‘범죄신고자 등이나 그 친족 등이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정해 적용한다’는 이 법 3조를 애써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법의 대다수 규정이 인적사항 공개 금지 등 신변 보호와 관련된 것도 법 도입 취지가 신고자에 대한 보복 방지를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찰 간부는 “정 회계사는 검찰이 이미 강제수사에 돌입한 뒤 조사에서 일부 혐의를 인정하고 녹취록 등 자료를 냈다”며 “‘신고’에 해당되지 않고 보복 가능성도 작은데 이 법을 적용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통상 대기업 관련 수사에서 회장이 회삿돈을 횡령해 비자금으로 쓴 경우 그 밑의 임원이나 부장 등이 공범으로 관여했더라도 월급쟁이 신분인 임직원들은 불구속하거나 불기소한다고 한다. 그 돈은 회장이 쓴 것이고 상급자 지시에 따른 것인 만큼 면책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대장동 원년 멤버’인 정 회계사는 구속된 김 씨나 남 변호사보다 먼저 대장동 개발사업에 관여해 왔고 ‘1827억 원+α’ 배임 혐의의 주범이다. 하급자가 아니고 이들과 수천억 원의 이익을 같이 나눈 동업자다. 다른 공범에 비해 혐의가 가볍지 않은 만큼 불구속 수사 등 편의를 봐줄 필요가 없다.

검찰이 수사 협조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거나 불기소했던 사례가 드문 일은 아니다. 2018년 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 수사에 협조한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 등은 불구속 기소됐다. 2017년 국정농단 특검 당시 최순실 씨의 태블릿PC를 제출하는 등 수사에 협조하며 ‘특급 도우미’라는 별칭이 붙었던 최 씨 조카 장시호 씨에 대해서도 검찰은 낮은 형량을 구형했다.

이 같은 일종의 ‘플리바기닝’은 수사의 효율성을 위해 필요하지만 현행법상 근거가 없어 논란이 반복돼 왔다. 2011년 ‘내부증언자 불기소 처분제 및 형벌 감면제’라는 제도로 입법이 논의됐지만 결국 “수사기관의 객관성과 투명성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은 안 된다”는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앞으로도 현행법 테두리 바깥에서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형벌 감면을 하게 놔둘지, 아니면 입법을 통해 양성화할지 논의해 볼 시점이다.

황형준 사회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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