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고양이를 부탁해[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2021-11-26 03:00업데이트 2021-11-26 03:05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딸아이들이 키우던 고양이 세 마리를 임시 보호하고 있다. 화이티, 푸딩, 도넛.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있으면 구름 속 현자가 된 느낌이 든다. 아침이면 침대로 올라오는 푸딩이 나를 깨운다. 코를 얼굴에 대고 비비고 꼬리로 얼굴을 만져주고는 내가 잠에서 깨면 임무를 마쳤다는 듯이 침대에서 내려간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화이티와 도넛이 번갈아 침대 위에서 같이 누워 잠을 청한다. 포근한 털복숭이를 손으로 만지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그래 지구라는 행성에서 난 외롭지 않아.” 뭐 이런 위안을 받는다.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리진 점이 많다. 집 안에서 모든 행동을 조심한다. 걷는 것부터 시작해 물건을 놓을 때 고양이 눈치를 본다. 고양이들이 허락하는 소음의 정도가 물리적 기준이다. 음악도 클래식을 주로 듣는다. 되도록이면 현관에서 기다리는 고양이를 위해 일찍 집으로 향한다. 3마리의 생명체가 함께하는 내 공간이 멋지게 다가온다.

물리학을 대표하는 고양이가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1935년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에르빈 슈뢰딩거가 원자 세계를 해석하는 어려운 문제를 고양이 비유로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등장했다. 현실 세계의 움직임은 뉴턴의 방정식을 통해 대부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원자의 세계는 뉴턴의 방정식을 통해 해석할 수 없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원자세계 속 전자의 움직임은 어떻게 예측해야 할까? 오직 확률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뉴턴의 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양자의 세계가 본질적으로 거시적 현실 세계와 다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측정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측정한 후에 전자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측정 전에는 확률로만 예측할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확률로 표현되는 양자역학의 세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원자의 세계를 해석하는 방법은 이 방법이 정설이다.

물리적 실체란 측정한 후에 나온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 사물의 본질은 측정 후에 결정되는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다. 측정하기 전에는 오직 확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고, 측정 후에 물리적 실체의 존재가 밝혀진다는 의미다. 뚜껑을 열어보지 않고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오직 확률로만 존재할 뿐.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미시 세계와 현실의 거시 세계를 구분하고 이해하는 방법론을 고양이가 등장하는 사고실험을 통해 이야기했다. 그 고양이가 저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고양이 세 마리와 살면서 사물의 이면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조용한 고양이들의 움직임이 좌표축 공간을 만들고 난 그 공간 속에 한 점이 된다. 나와 고양이는 서로를 관찰한다. 이런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고양이와의 관계는 마치 성질이 다른 두 개의 세상 같다. 나의 현실 세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양자 세계처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