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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김정은은 왜 삼지연을 10번이나 시찰했을까[주성하의 北카페]

입력 2021-11-21 09:00업데이트 2021-11-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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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삼지연시 건설사업장 현지 시찰에 나선 김정은. 35일 만에 첫 공개 활동이며 올해 평양 밖 지역을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출처 조선중앙통신
김정은이 35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6일 백두산 아래 위치한 삼지연시 꾸리기 3단계 공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지 지도를 했는데, 2012년 12월부터 9년 사이 삼지연에만 10번이나 찾아갔습니다.

삼지연시 간부들은 죽을 맛이겠습니다. 김정은이 자주 찾아간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죠. 올 때마다 이번엔 무슨 평가를 내릴지 조마조마할 겁니다. 칭찬 받으면 승진이겠지만 욕먹으면 목을 내대야 합니다. 승진하려는 욕심에 목숨 걸 사람은 없겠죠.

김정은이 집권 이후 삼지연만큼 자주 찾아간 곳이 강원도 원산입니다. 강원도 간부들은 죽을 맛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김정은은 원산을 자주 방문하는데, 그래서 강원도와 원산의 간부들은 다른 지역 간부들로부터 동정의 시선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왜 김정은은 원산과 삼지연에 이처럼 큰 관심을 가질까요. 김일성 시대부터 북한 권력자가 현지 시찰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 대개 그 주변에 애용하는 별장이 있습니다. 거기 찾아가 놀다가 심심하면 밖에 나와 돌아보는 것이 현지 지도가 됩니다.

김정은이 집권 초기 원산을 수없이 들락거린 것도 원산 송도원 옆에 김정은이 태어난 ‘602초대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어릴 적 향수를 느끼며 놀다가 심심하면 나와서 원산 시내 좀 돌아보면서 “뭔 도시가 이따위냐”는 식으로 호통 좀 치고 들어가는 겁니다. 이것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를 푸는 행동입니다. 한편으로 주기적으로 대내외에 “내가 멀쩡하게 살아있고, 나라를 잘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김정은이 삼지연을 10번이나 찾은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아마 원산 다음으로 많이 방문한 지방이 삼지연일 겁니다. 삼지연에도 김일성 때부터 김 씨 부자들이 애용하던 별장이 있습니다. 김일성이 특히 애용했고, 김정일은 잘 다니지 않았지만, 김정은이 다시 자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백두산 아래는 공기도 좋지만, 고도가 높은 지대에 살수록 심장마비와 뇌졸중에 걸릴 위험성이 낮아진다는 연구도 있어 특히 자주 가는 것 같습니다. 김정은이 가장 우려하는 질환이 바로 심혈관질병이 아닐까요. 일단 유전적으로 취약합니다. 할아버지 김일성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고, 아버지 김정일은 뇌졸중으로 사망했습니다. 게다가 김정은은 몸무게가 100㎏ 이상 나가 이런 질병에 더 취약합니다. 그래서 백두산을 열심히 찾아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어릴 때부터 살았던 스위스의 수도 베른은 해발고도 500m 이상이었고, 주변에는 알프스 산맥이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컸던 김정은이니 고산지대가 몸에 맞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별장을 가는 길에 삼지연 시내를 보니 매우 거슬렸겠죠. 삼지연은 워낙 외진 곳에 있는 곳이라 발전이 별로 없고, 도시도 매우 낙후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정은은 “무슨 군 소재지가 이렇게 더럽냐. 당장 멋있게 꾸려라”고 호통을 쳤겠죠.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외국에서 살지 않고, 인생의 대다수 시간을 북한에서만 보냈기 때문에 낡은 도시가 익숙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스위스 알프스 산맥의 멋진 집들을 보고 자라온 김정은에겐 백두산 아래에 이렇게 남루한 집들이 있다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후 백두산 별장에 갈 때마다 삼지연을 돌아보며 이것저것 잔소리하다보니 벌써 10번이나 찾았겠죠. 양강도 도 소재지인 혜산을 현지 시찰했다는 공식 보도는 없는데, 양강도에서도 가장 외진 지역인 삼지연만 뻔질나게 드나듭니다. 삼지연엔 공항이 있어 혜산을 들리지 않고도 전용기를 타고 곧바로 갈 수 있기 때문이겠죠. 북한 전체를 다스려야 할 김정은이 도 소재지는 가지도 않고, 외진 시골의 한 지역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16일 김정은의 삼지연 방문은 그가 올해 평양 밖을 시찰한 첫 사례입니다. 올 한해 거의 활동이 없었는데,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보기엔 “저렇게 놀아도 권력이 유지 되는가” 싶어 부러움을 살 일입니다.

김정은은 그동안 왜 지방엔 나가지 않았을까요. 그토록 좋아하는 포사격이나 미사일 발사 참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올해 달라진 김정은의 체형과 연관지어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올해 최소 20㎏ 이상 감량을 했다고 합니다. 주지육림에 빠져 살 수 있는 김정은이 그 모든 유혹을 참고 살을 뺐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긴 합니다. 살을 빼기 위해 위 절제 수술을 받았든, 운동을 했든, 아무튼 열심히 노력했다는 증거입니다.

살을 빼는 동안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마시고, 폭식하는 일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선 일상과 멀어져야 했을 겁니다. 또 운동과 요양도 병행이 돼야 하겠죠.

전국에 수십 개의 별장을 갖고 있는 김정은이 평양에만 붙어있기는 답답할 겁니다. 원산에도 찾아가 지냈을 것이고, 다른 곳에도 다녔을 것입니다. 이번 삼지연 방문도 일부러 도시 건설을 파악하기 위해 갔다기 보단 백두산 별장에서 보내다가 잠깐 나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김정은의 삼지연 시찰 보도를 접하고, 사진 속 김정은 얼굴부터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혈색이 좋아 보이더군요. 당장 죽을병에 걸린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렇지만 올 한해 지방 시찰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건강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처럼 김정은이 오랫동안 사라지면 외부에서 꼭 등장하는 것이 건강이상설이죠. 김정은이 갑자기 사망하면 북한에 큰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적 권위자가 사라진 북한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죽으면 여동생 김여정이 물려받아 큰 혼란이 없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만 권력을 물려받는 것과 권력을 지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김정은이 권력을 지킬 수 없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김정은은 10년 넘게 안정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례 때문에 북한 체제라면 김여정도 권력을 잘 휘두를 수 있다고 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이 가부장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 권력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부는 맞는 말이지만 그게 핵심은 아닙니다.

권력은 하루아침에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김정은 역시 3년이나 권력이양기를 거쳤습니다. 김정일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가 깨어난 뒤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일에 3년 내내 몰두했습니다. 가장 먼저 비밀경찰인 보위부의 권력을 넘겨주고, 이후 군부를 넘겨주었으며, 당을 장악하게 했습니다. 한편으로 나라의 금고라고 할 수 있는 39호실과 군부 돈줄을 모두 장악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2년 동안 치밀한 로드맵을 거쳐 권력과 돈을 다 물려준 뒤 2010년 9월에야 김일성광장에 아들을 데리고 나와 “내 후계자는 김정은이다”라고 대내외에 알렸습니다. 권력 세습의 정통성을 확인시켜준 것이죠.

만약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가령 장성택과 그의 측근들은 맏아들인 김정남을 밀고, 조직지도부는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을 밀고, 누구는 김정은을 밀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손을 들어줄 김정일은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의 논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권력 투쟁에서 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각 파벌은 목숨 건 권력 다툼에 나설 것이고, 이럴 경우 피바람이 불어 북한에 혼란이 오게 됩니다. 하지만 김정일이 3남 김정은을 낙점해 인민들 앞에서 공표했기 때문에 김정은 아닌 다른 아들을 미는 사람은 정통성을 주장하기 어려웠죠.

단순하게 후계자로 인정했다고 그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 정, 군과 함께 비밀경찰과 돈까지 김정은이 미리 틀어쥐게 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통치가 가능했죠.

반면 지금 김정은이 쓰러지면 김여정은 아무런 세습 과정도, 정당성도 없이 권력을 물려받게 됩니다. 가뜩이나 허약한 4대 세습에서 권력과 총대, 돈을 장악하지 못한 김여정이 북한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젊은 김정은이 벌써 아버지처럼 김여정에게 권력을 물려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이 갑자기 쓰러지면 북한이 그만큼 위험해지는 것이죠.

김정은이 오랫동안 사라지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그래서 위험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삼지연에 나타난 김정은의 혈색을 보니 당분간은 건강이상설은 나올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그가 내년에도 평양 밖을 다니지 않는다면 건강이상설은 언제든지 고개를 다시 들게 될 것입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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