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美가 공들인 한미일 협력 자리서 ‘독도방문’ 트집…회견 거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8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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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에 참석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왼쪽부터). 외교부 제공
1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에 참석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왼쪽부터). 외교부 제공
1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 후 진행하려던 3국 공동 기자회견이 돌연 무산됐다. 일본 측이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에 반발하면서 기자회견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한일 갈등이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및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다자협력 논의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향후 한미일 3각 협력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오전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모리 다케오(森健良)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3자 차관급 협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한미일 공동 기자회견은 예정시간을 2시간가량 앞두고 셔먼 부장관의 단독 회견으로 형식이 바뀌어 취재진에 공지됐다. 국무부 내 기자회견장에 혼자 나타난 셔먼 부장관은 “일본과 한국 사이에 일부 이견이 계속되고 있고, 오늘 회담과는 무관한 이런 차이 중 하나 때문에 회견 형식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최 차관은 이후 개별적으로 진행한 한국 특파원단과 간담회에서 “일본 측이 우리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 문제로 회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고 밝혔다.

3자 회담 및 이후의 한일 양자 회담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번 회담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취임 후 양국 간 첫 고위급 대면 협의였다. 모리 차관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며 김 청장의 독도 방문에 대해 최 차관에게 항의했고, 최 차관은 한국 경찰청장이 한국 영토의 현지 상황을 점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의 주장을 일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日, 한미일 외교차관 회견 2시간전 “불참” 통보

한미일 3각 협력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북한의 위협 대응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 견제 등 차원에서 복원 및 강화에 공을 들여온 분야다. 쿼드(Quad)나 오커스(AUKUS) 같은 역내 협의체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은 한국으로서도 이는 중요한 다자논의 참여의 틀이었다. 3국은 2017년 1월 이후 5년 가까이 열리지 않았던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를 올해 7월 되살렸고 정례화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결국 일본의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과 이를 다시금 촉발한 김창용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 양국은 워싱턴 한복판에서 뿌리깊은 갈등을 노출하고 말았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일본의 수출규제 등 두 나라가 격하게 충돌해온 현안에 독도 문제까지 다시 불거진 형국이다.

간신히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던 3자 고위급 협의 채널은 그 여파로 초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일본 측 참석자들은 김 청장의 독도 방문으로 자국 내 분위기가 악화하면서 미국행 비행기를 못 탈 뻔했다고 한다. 이들은 “그래도 한미일 회의는 중요하다고 상부를 설득해 워싱턴에 왔다”고 미국 측에 이야기했다고 정부 고위관계자는 전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18일 기자회견에서 한미일 공동 기자회견이 무산된 배경에 대해 “이번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를 둘러싼 사안은 우리나라 입장에 비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한국 측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는 가운데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날 기자회견에서는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고 극히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혼자 진행한 기자회견 내용은 한미일 3각 협력을 강조하고 북한의 관여를 촉구하는 원론적 수준에 머물렀다. 그는 어그러진 기자회견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매우 건설적인 3자 회담을 가졌다”며 “이는 한미일 3자 형식이 왜 그렇게 중요하고 강력한지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셔먼 부장관은 종전선언 관련 질문에는 “매우 만족한다”며 “미국은 한국, 일본 및 다른 동맹 및 파트너들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최고의 방법을 찾기 위한 협의에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종전선언과 관련한 한미 간 이견이 해소됐는지, 조만간 발표 계획이 있는지 등에 대한 잇단 질문에 “한일 양국과 협의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했다. 한미 간 종전선언 논의가 거의 마무리돼 합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정부 고위당국자들의 발언을 뒷받침할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셔먼 부장관은 이 자리에서 “일본과 한국, 미국은 북한이 해서는 안 되는 미사일 발사를 한 것에 대해 제재를 부과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동의한다는 점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대북제재 이행을 언급했다.

일본 측도 종전선언에는 여전히 냉랭했다. 복수의 일본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은 이날 3자 협의에서 종전선언 관련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다시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비핵화 등 한반도 평화 안정에 도움이 돼야 수용하겠다”는 ‘조건부 수용’ 입장을 밝혔지만,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오지도 않는 상황을 감안하면 단기간 내에 조건 충족을 기대하기 어렵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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