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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독재는 ‘선동의 기술’[임용한의 전쟁사]〈187〉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1-11-16 03:00업데이트 2021-11-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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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 후기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절친이며, 야심가였던 아테네의 알키비아데스는 주적인 스파르타를 버려두고 뜬금없이 시라쿠사 침공을 주장한다. 아테네는 사상 최대의 함대를 시라쿠사로 파견한다. 원정은 참패로 끝났고, 아테네 몰락의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이 원정은 시라쿠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처음에 시라쿠사는 아테네 함대의 위용에 놀라 항복하려고 했는데, 헤르모크라테스의 반대로 항전을 결정했다. 그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영웅이 되었다. 당연히 권력이 따라왔다. 아테네의 침공을 물리친 대가로 시라쿠사는 독재의 길을 걷게 된다. 헤르모크라테스의 사위였던 디오니시우스 1세는 장인의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권력을 늘렸다. 그도 역시 장군으로서 카르타고의 침공을 막아내어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마침내 참주를 거쳐 왕이 된다.

시라쿠사에 가면 디오니시우스의 귀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다. 디오니시우스가 정적을 가두고 고문한 감옥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대단한 독재자였지만 유능하고 정치력이 뛰어났다. 문인 군주, 철인 군주의 흉내를 내던 그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를 품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모색하던 플라톤을 시라쿠사로 불러들인 적도 있다. 플라톤은 디오니시우스의 아들을 교육하며 철인군주의 이상을 꿈꿨지만, 음모꾼이자 현실정치의 달인이었던 디오니시우스는 플라톤의 철인군주론에 기겁을 하고 그를 노예로 팔아버린다.

디오니시우스의 일생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전쟁은 패하면 적의 노예가 되고 승리하면 영웅의 노예가 된다. 그렇지 않은 훌륭한 사례도 많지만, 전쟁영웅이 위험한 권력자로 변신한 경우는 꽤 흔하다. 이건 전쟁이나 군인 탓이 아니라 대중들의 ‘영웅대망론’, 초월적인 권력이 단숨에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조급증 탓도 있다. 그래서 독재는 본질적으로는 ‘선동의 기술’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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