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상속 유류분 개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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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가 배우자가 있고 자녀가 둘일 때 첫째 자녀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했다 하더라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 첫째 자녀, 배우자, 둘째 자녀는 2.25 대 0.75 대 0.5의 비율로 상속받는다. 유류분(遺留分) 때문이다. 배우자와 자녀의 유류분은 법정 상속분의 절반이다. 배우자와 자녀 2명이 있을 때 법정 상속분은 배우자 1.5, 첫째 자녀 1, 둘째 자녀 1이므로 유류분은 배우자 0.75, 둘째 자녀 0.5이고 나머지가 첫째 자녀의 차지가 된다.

▷유류분 제도는 농경사회의 잔재다. 농경사회에서는 자녀들이 부모의 생산 활동에 동참한다. 한 자녀에게 전 재산을 물려줄 경우 다른 자녀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른 자녀에게도 최소한의 보상을 하는 게 유류분이다. 우리나라는 1977년 유류분 제도를 도입했다. 산업화의 한가운데서 시대착오적으로 농경사회의 잔재를 도입한 측면이 있다.

▷유류분 제도는 유럽 대륙 국가를 중심으로 남아있다. 영미법 계통에는 없다. 유럽 대륙 국가들도 오늘날 사망자 형제자매의 유류분 권리까지는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많다. 법무부는 9일 형제자매의 유류분 권리를 없애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유류분 제도를 개혁했다고 보기 어렵다.

▷산업사회에서는 가족이 함께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녀라고 해서 무조건 유류분을 줄 이유가 없다. 미성년자를 중심으로 평균적인 경제활동 시작 연령 미만의 자녀에게만 유류분을 줘도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 그 연령 이상의 자녀는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장애가 있는 자녀 등을 예외적으로 포함시킬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가업(家業)을 이어가기 어려운 이유가 가업 승계 목적의 상속에 대한 면세 혜택이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자녀들이 유류분 권리를 행사해 지분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류분 제도는 근대적 상속의 제1원칙인 유언의 자유를 제한한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유언의 자유를 제약하는 요인은 가능한 한 줄이는 게 좋다.

▷상속은 법정 상속에서 개인 의사를 존중하는 유언에 의한 상속으로, 다시 신탁 등을 이용한 상속으로 발전하고 있다. 신탁 상속은 재산을 신탁회사에 맡겨 관리하면서 상속인에게 어떻게 배분할지 미리 정해 놓았다가 사망 후 배분된 재산의 비율대로 수익금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엄격한 요식을 요구하는 유언에 비해 유연하고, 효력에 대한 분쟁이 잦은 유언에 비해 확실한 상속 방법이다. 다만 미국처럼 유류분 제도가 없어야 발전할 수 있다. 유류분 제도의 더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상속 유류분#개혁#유류분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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