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시동 건 ‘캐스퍼의 기적’… “파업 없는 車생산 전문기업 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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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태 광주글로벌모터스 사장

출시되자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귀여운 외관의 캐스퍼가 생산라인에서 조립되고 있다. 광주=박영철기자 skyblue@donga.com
출시되자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귀여운 외관의 캐스퍼가 생산라인에서 조립되고 있다. 광주=박영철기자 skyblue@donga.com
허진석 논설위원
허진석 논설위원
《국내 첫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가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를 얻고 있다.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9월 14일 첫날 올해 생산 가능 물량인 1만2000대를 훌쩍 넘긴 1만8900대의 주문을 받았다. 주문이 쌓이면서 지금은 4개월가량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운전석까지 모두 접히도록 한 공간 활용성, 첨단운전자 보조시스템, 단단하면서도 깜찍한 느낌이 나는 외관, 다양한 외장 색상 등이 주목을 끈다. 캐스퍼의 판매 호조로 캐스퍼를 만드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GGM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자리를 목적으로 광역지방자치단체(광주시 산하 광주그린카진흥원)가 최대주주로 나서 만든 회사다. 23년 만에 국내에 설립된 자동차 제조 공장이라는 의미도 남다르다. GGM은 현대자동차로부터 부품을 공급 받아 캐스퍼를 생산한다. 박광태 GGM 사장(78)은 2019년 9월 설립 이후 2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고, 3일 연임이 결정됐다. 4일 취임식을 한 그를 광주 광산구 빛그린산업단지 내 공장에서 만났다. 그는 국회의원과 광주시장을 지냈다.》

내년 봄까지 500명 추가 채용

박광태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사장은 4일 “노사 상생의 정신이 열악한 환경에서 캐스퍼를 빠르게 양산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했다. 광주=박영철기자 skyblue@donga.com
박광태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사장은 4일 “노사 상생의 정신이 열악한 환경에서 캐스퍼를 빠르게 양산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했다. 광주=박영철기자 skyblue@donga.com
―노사 상생 일자리 회사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캐스퍼가 나왔다.

“18만 평 부지에 연 10만 대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을 짓고 양산을 하는 데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초고속 진행이었던 셈이다. 임원급 인원 5명이 건설공정 관리하고, 직원 채용하고 교육하는 일을 도맡아했다. 직원들의 협력과 현대자동차의 도움이 컸다.”

―성공했다고 보나.

“지금까지는 순조롭다고 할 수 있다. 캐스퍼가 잘 팔리면서 지금 직원과 맞먹는 500명가량을 내년 4, 5월까지 추가 채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자리가 더 느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지금은 직원들 임금이 같은 직종의 60% 수준이다. 이를 더 끌어올려야 진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GGM의 직원은 현재 570명이다. 대부분이 생산직으로 라인에 배치돼 있다. 평균 연령은 28.3세. 고교 및 전문대 졸업자가 많다. 거의 대부분이 직무 경험이 없어 회사가 교육한 뒤 현장에 배치한다. 직원들은 평균 연봉이 3500만 원(주 44시간 근무 기준) 정도인 것을 대부분 알고 입사한다.

지속 가능성이 절대 목표


―세간에선 ‘관(官)이 주도해 만든 회사인데, 오래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그런 시각을 노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지속 가능하기 위해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제품에 불량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파업 등으로 납기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불량과 납기 차질이 발생하면 수주 감소로 이어져 생존이 위태롭게 된다. 이런 점은 근로자도 잘 알고 있다.”

GGM은 캐스퍼의 판매 호조로 생산량을 더 늘려달라는 현대차의 요청을 받고 있지만 양산 초기 품질 관리를 위해 거절하고 있다. 불량품이 나오는 것도 치명적이라고 보고, 검수를 하는 현대차에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불합격 처리를 해달라’고 요청해 둔 상태다.

―파업이 없으려면 직원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노사 관계는….

“현재 노조는 없고 노사상생협의회가 있다. 근로자위원 6명과 사측위원 6명으로 총 12명이다. 노사 관계가 나빴다면 자동차 조립은 처음인 직원들이 2년 만에 양산에 성공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직원들은 GGM이 일자리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알고 이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회사 설립 초부터 민노총은 직원들을 민노총에 가입시키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했다. 민노총이 가입 권유 문자를 보내오자 직원들이 나서서 개인정보 도용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할 정도다. 광주시와 협약을 맺은 한국노총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품질과 납기에 전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장에 붙어 있는 근로자대표의 당선 인사말이 인상적이다. 10월 말 근로자 88%의 동의를 받아 당선된 이제헌 씨는 “GGM 탄생과 공장 준공, 성공적인 양산은 우리 모두가 이뤄낸 훌륭한 결실”이라며 “주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회사를 지키고 최고의 품질과 상생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노조 필요성 못 느끼도록 진력

―어려움은 없었나.

“대기업에 비해 임금이 낮으니 조립 기술을 가르쳐야 할 중간간부를 구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었던 분들과 자동차 관련 중소기업에서 일한 분들 중에서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 회사 초기에 강성 노조가 생기면 양산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어 이 부분도 신경이 많이 쓰였다. 경력직으로 오신 분들 중에는 일자리를 잃고 고생을 해서인지 상생협의회 방식을 잘 따라 주었다. 덕분에 신입직원들을 빠르게 교육할 수 있었다.”

―강성 노조는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것 아닌가.

“노사 상생 회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노조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선 고용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해고를 없앴다. 사장보다 오래 회사를 다닐 직원들이 주인이라고 늘 강조한다. 둘째로 임금 문제다. 연간 7만 대 정도를 생산하게 될 내년이면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면 직원들 성과급부터 챙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로 방지다. 여가를 중시하는 MZ세대가 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업무 배정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임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탈은 없나.


“임금을 더 많이 주는 다른 자동차 회사로 이직하는 직원이 더러 있다. 붙잡을 수도 없고 붙잡지도 않는다. GGM에서 얻은 기술과 경험으로 더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된다면 그것 또한 GGM의 설립 목적과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차직업훈련소 역할을 해도 좋다는 생각이다.”

공장에서 만난 직원들 대부분은 20, 30대로 활기가 넘쳐 보였다. 연공서열을 없애 서로를 매니저라고 불러 스타트업을 방문한 듯했다. 한 시간에 22대, 하루에 200대가량을 생산하고, 지금은 교대근무 없이 일과를 끝낸다. 임금은 적지만 고용안정에 만족하는 직원이 많다. 이들은 애로 사항을 사장에게 직접 알릴 수 있다. 구내식당 앞에 있는 ‘상생함’에 넣으면 사장이 직접 읽고 결과를 알려준다. 매월 둘째 주 수요일에는 경영진으로부터 회사 경영상태에 관한 정보를 공유받는다. 노사의 소통과 신뢰를 위한 작은 장치들이다.

노사 상생 문화 만든다는 각오


―회사가 독자적 생존을 하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지금 연 10만 대인 생산 능력을 5∼10년 내에 20만 대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대만의 폭스콘이나 TSMC 모델처럼 자동차 분야에서 수탁생산 전문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20만 대는 생산해야 규모의 경제가 생긴다. 직원이 늘더라도 노사 상생의 문화가 지속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도 관건이다.”

―노사 상생 문화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있나.


“생각하는 복안은 사원주주 회사다. GGM은 머지않은 미래에 상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사원들이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주식을 나눠 줄 계획이다. 말로만 주인이라고 해서는 지속될 수 없지 않겠나.”

GGM은 현대차와의 협약을 통해 5년간은 35만 대 주문량을 보장받고 인건비와 경상비 등의 지원을 받는다. 그동안 힘을 길러야 한다. 기술력을 높여 대형차 조립 주문도 받고 외국으로부터 주문을 받아야 20만 대를 채울 수 있다. GGM이 지금 공장 바로 옆에 연 10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춘 공장 부지를 마련해 둔 상태다.

국내에선 노사 문제 등이 이유가 돼 자동차 제조회사가 20여 년간 세워지지 않았다. GGM은 노사 관계가 안정되면 국내에도 다시 자동차 공장이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시금석이다. 앞으로 2∼3년이 중요한 시기다. 박 사장은 “GGM은 노사 상생 문화를 만드는 기적에 도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주=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광주글로벌모터스#박광태 사장#캐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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