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튜브]‘아다지에토’는 연가인가, 죽음의 음악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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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사랑과 죽음은 공통된 의식의 근원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에곤 실레의 유화 ‘죽음과 소녀’(1915년). 동아일보DB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사랑과 죽음은 공통된 의식의 근원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에곤 실레의 유화 ‘죽음과 소녀’(1915년). 동아일보DB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구스타프 말러가 1902년에 쓴 교향곡 5번 다섯 개 악장 중에서 네 번째 악장인 ‘아다지에토’는 매우 탐미적이고 도취적인 음악이다.

이 곡은 특히 인기가 높아진 계기들이 있었다. 하나는 1971년 발표된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다.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영화는 한 예술가의 탐미적 의식과 파멸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표현해 주목을 받았다. 배경음악으로 쓰인 작품이 말러의 아다지에토였다.

이 영화가 나오기 3년 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시되던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암살당했다. 형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5년 만이었다. 뉴욕 성 패트릭 대성당에서 장례식이 열렸고 번스타인이 지휘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연주했다. 이후 이 음악은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추모하는 음악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추모의 음악으로 쓰이는 데 대해 반대 의견도 있다. 말러 연구자이자 아마추어 지휘자인 길버트 캐플런(1941∼2016)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캐플런은 말러와 절친했던 네덜란드 작곡가 빌럼 멩엘베르흐의 얘기를 소개한다. 말러는 연애 시절 훗날 자신의 신부가 되는 알마에게 이 곡의 악보를 보냈다고 멩엘베르흐는 얘기한다. 알마는 즉시 이것이 자신에게 주는 말러의 러브레터임을 알아차렸고, ‘내게 오세요’라는 회답을 보냈다는 것이다. 멩엘베르흐는 알마와 말러 두 사람으로부터 직접 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한다.

멩엘베르흐는 말러가 알마를 위해 쓴 시도 소개한다. 아다지에토의 선율에 맞춰 불러 보면 그 시작부는 가사와 선율이 일치한다. “그대 나의 사랑, 나의 태양이여/그대에게 말로는 이야기할 수 없소/나의 동경….”

말하자면, 이 아다지에토는 사랑의 음악이지 죽음의 음악이 아니니까, 장례식에서 쓰거나 애도의 장면에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캐플런은 또 이렇게 얘기한다. “사랑의 음악인 아다지에토는, 그동안 장송 음악처럼 너무 느리게 연주되었다. 더 빨리 연주해야 한다. 앞에 말러의 러브레터 얘기를 소개한 멩엘베르흐도 이 곡을 훨씬 빠르게 연주했다.” 맞는 이야기일까.

멩엘베르흐가 지휘한 이 곡을 들어 보면 실제로 훨씬 빠르게 들린다. 번스타인이 로버트 케네디 장례식에서 연주한 실황은 11분 6초다. 멩엘베르흐 연주는 7분 9초. 번스타인이 두 박자를 가는 동안 멩엘베르흐는 세 박자를 가는 셈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빠르건 느리건, 사랑의 음악은 추모나 장례에 쓸 수 없는 것일까.

말러의 가곡인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다’는 그가 교향곡 5번 1년 전인 1901년에 쓴 곡으로, 아다지에토의 원형이 된다고 분석되는 작품이다. 선율이 떠오르듯이 시작되는 시작 부분이나, 반대로 깊이 가라앉듯이 꺼져가는 마지막 부분이 닮았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다. 내가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낸 세상에서/사람들은 생각하리라, 내가 죽었다고/ (…) 그러나 나는 홀로 나의 천국에 산다./내 노래 속에, 내 사랑 속에.”

말러가 활동했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인간의 여러 본능, 특히 타나토스라고 일컬어지던 죽음의 본능과 에로스, 즉 사랑의 본능이 깊은 연관을 갖는다고 해석되는 시기였다. 말러의 심리 상담을 했던 프로이트는 그런 정신적 흐름을 대표했다. 같은 예술 작품이 사랑과 죽음을 동시에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 곡들을 쓰기 직전인 1901년 2월에 말러는 죽음의 문턱을 넘보고 왔다. 대량의 장기 출혈을 겪었던 것이다. 의사는 조금 더 출혈이 계속됐으면 말러가 생명을 잃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의 문턱을 엿보고 온 말러에게는 결혼으로 이어질 새로운 사랑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어진 죽음과 사랑의 거대한 심리적 흐름을 말러는 한 곡에서 동시에 표현하지 않았을까.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말러와 그에게 영향을 준 음악가들을 조명하는 실내악 연주회 ‘구스타프 말러를 위하여’가 열린다. 말러 연구가 김문경이 해설을 맡고 말러 ‘아다지에토’도 연주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아다지에토#연가#죽음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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