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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얼굴[이승재의 무비홀릭]

입력 2021-11-05 03:00업데이트 2021-11-05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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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아내는 얼굴이 훼손되어 다른 얼굴로 남편을 찾아온다. 그런데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 얼굴이 다르면 다른 사람일까? 얼굴이 같으면 같은 사람일까? 영화 ‘피닉스’. M&M인터내셔널 제공
[1] 친구의 아내는 전업주부인데요. 휴일에 혼자 외출할 때는 세탁기 돌리기, 재활용 쓰레기 분류해 버리기, 아이 수학숙제 봐주기 같은 ‘오늘 할 일’을 적은 포스트잇을 냉장고에 붙여놓는답니다. 그리고 목록마다 빈 네모(□) 표시를 그려 놓아요. 남편이 과업을 완수할 때마다 네모 안에 검은 칠(■)을 해야 한다는 거죠. 친구는 아내에게 항의했답니다. “굳이 ‘초딩’에게 과제를 내듯 할 필요까지 있느냐”고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아내와 함께 아파트 앞길을 걷다 깜짝 놀랐습니다. 지나가던 여성 둘이 아내를 보더니 “아이고, 선생님”이라며 인사를 건네더랍니다.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탓이라지만, 여성들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으로 아내를 착각했던 거죠. 친구가 제게 푸념했습니다. “관상은 속일 수 없어. 와이프는 죽는 날까지 나를 가르치고 ‘지적질’을 할 거야”라고요.

[2] 얼굴이 같으면 성향도 같을까요? 관상은 과학일까요? 얼굴이 같다고 해서 사랑도 같아질 순 없어요. ‘페이스 오브 러브’(2014년)라는 영화가 그래요. 목숨을 걸고 사랑한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우울감에 사무치던 여자(애넷 베닝)는 어느 날 죽은 남편과 똑같이 생긴 남자(에드 해리스)와 마주쳐요. 여자는 운명적 사랑을 느끼며 화가인 남자에게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남자는 아픔이 뒤섞인 묘한 감정에 이끌리며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요. 하지만 여자는 깨달아요. 자신이 사랑한 남자는 죽은 남편의 대체물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그녀의 대사처럼 그녀는 남자를 “사랑(love)”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필요(need)”로 했던 것이지요.

사실, 얼굴과 정체성에 관한 진짜로 고차원적인 영화가 있어요. 스릴러의 대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최고작 ‘현기증’(1958년)이지요. 고소공포증 때문에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는 남자(제임스 스튜어트)는 높은 종탑에서 떨어져 죽은 여인을 자신의 현기증 탓에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요. 남자는 놀랍게도 죽은 여인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금발 미녀(킴 노백)를 우연히 만나고, 그녀에게 야누스적 감정을 느끼게 되지요. 그녀를 사랑하면 죽은 여인을 되살려 내었다는 영혼의 면죄부를 받는 것도 같지만, 동시에 죽은 여자가 되살아나 저주를 퍼붓는 듯한 두려움이 심장을 옥죄어 오는 거죠. 남자가 이때 느끼는 어지럼증은 매혹일까요, 아니면 공포일까요? 남자의 이율배반적인 내면은 ‘줌 인 트랙 아웃’(줌 렌즈를 이용해 대상을 당겨 찍으면서 동시에 카메라는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시각적 왜곡 효과)이라는 히치콕의 창의적인 촬영법을 통해 시각화되지요.

근데 아시는지요? 청년 시절 히치콕은 금발 미녀들을 도착적으로 좋아해 엄청 따라다녔다고 해요. 하지만 ‘못생긴 얼굴에다 작은 키’(히치콕 자신의 표현) 탓에 매번 퇴짜를 맞았다지요. 그래서 자신을 거부한 금발 미녀들에 대한 복수심에 들끓어 이후 자신의 영화들에서 금발 미녀들만 골라 죽였답니다. 어때요? ‘세상 모든 예술작품은 사심(私心)의 투영 혹은 왜곡이다’라는 명언이 꼭 들어맞는 대목이지요. 아, 이 명언은 누가 남긴 말이냐고요? 제가 한 말이에요.

[3]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영화가 있어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를 다룬 ‘피닉스’(7월 개봉)라는 유럽 영화예요. 1945년 6월,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던 유대인 여가수 넬리가 극적으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와요. 수용소에서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그녀는 성형수술을 받고 다른 얼굴이죠. 사랑하는 남편 조니를 찾아온 넬리는 깜짝 놀라요. 남편이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아내가 죽은 줄 알았던 조니는 아내와 키가 비슷한(아니 똑같은) 이 여자로 하여금 자기 아내 역할을 하도록 사주해요. 아내가 남긴 막대한 유산을 가로채려고요. 꼭지가 돌아버린 여자는 복수의 칼을 간다는 내용이에요.

‘페이스 오브 러브’의 여자는 죽은 남편과 닮은 남자를 사랑하면서까지 남편의 영혼을 붙잡아두려 해요. 반면 ‘피닉스’의 남편은 아내가 찾아와도 얼굴이 다르면 분간하질 못하죠. 심지어 몸을 섞는 순간까지도요. 이것은 사랑을 받아들이는 여자와 남자의 온도차일까요? 아니면 영화적 허용에 불과할까요? 이 순간, “아내는 죽은 남편을 심장에 묻고, 남편은 죽은 아내를 땅에 묻는다”는 기막힌 명언이 새삼 떠오르네요. 칸트의 정언명령에 버금가는 이 멋진 말은 또 누구의 명언이냐고요? 제 말이에요. 끝.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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