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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기록이 역사의 승자 만든다[임용한의 전쟁사]〈185〉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1-11-02 03:00업데이트 2021-11-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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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지만, 그 의미는 개연성이 있다. 전쟁사에서 대부분 기록은 승리자 측의 기록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틀렸다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승자의 기록이란 승자, 승리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다. 기록을 남긴 자가 역사의 승리자가 된다.

과거 역사학에서 그런 경향이 있기는 했는데, 기록이 없다고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예를 들면 구석기인들이 석기만 사용했을까? 아니다. 나무 도구도 사용했을 것이다. 동굴이 아니라 나무와 가죽을 이용해서 야지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무나 가죽은 썩어서 그런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한때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던 시대도 있었다. ‘증거주의’의 오용이다.

나도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나무와 텐트를 사용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정도는 역사책에 서술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긴 나무 도구를 사용했을 것이다, 나무칼을 깎아서 전쟁을 했을 것이다’라고 서술한다면 이건 선을 넘는 것이다. 심증이 간다고 해도 증거 없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하다. 전쟁사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제 90세 넘은 6·25전쟁 참전용사를 만났다. 기관총 사수였다고 한다. 멀지도 않은 20세기 중반에 벌어진 한국전쟁, 그분의 증언을 광범위하고 상세하게 전문적으로 채록해야 했는데 그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면 꽤 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았다. 아무리 늦어도 1990년대에 이 작업을 시작했어야 했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늦었다. 90년대에 나는 개인적으로는 여력이 없었고, 도움을 요청할 능력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이런 말을 하는 건 우리 사회가 기록에 대한 투자의 가치를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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