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戰士를 길러낸 놀이”… ‘게임’에 담긴 시대의 생존법[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1-10-29 03:00수정 2021-10-2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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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오징어게임’으로 40년 전 한국 아이들의 놀이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우리 기억 속에서도 희미하게 남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놀이가 잔인한 어른들의 게임으로 이어지는 이 드라마에 세계는 왜 열광할까. 인간의 역사에서 단순한 놀이는 없었다. 험난한 자연환경을 딛고 유라시아를 제패한 유목 전사들에게 놀이는 잔인한 세상의 축소판이었고, 또 놀이로 키운 실력은 군사력의 원천이었다. 고고학 자료로 발견되는 놀이, 그 속의 숨겨진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자.》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태어난 후 몇 년간 부모와 사회의 집중적인 보호를 받으며 그사이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인 지식을 배워야 한다. 이 기간 인간은 다른 사람의 삶을 흉내 내고 따라 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다. 아이들은 조상의 경험을 신화와 전설로 배우며 삶을 흉내 내고 모방하는 놀이를 하게 됐다. 4만∼5만 년 전 구석기시대 동굴벽화부터 고구려 벽화까지 생생한 벽화는 모방을 위한 교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다양한 놀이로 그들이 이겨 나가야 할 세상을 미리 실습했다.

놀이로 단련한 초원의 전사


몽골 초원에서 말 경주를 하는 아이들. 울란바토르에서는 지금도 매년 전통 축제인 나담축제가 열리는데 이때 씨름, 말타기, 활쏘기 등 3가지 경기가 펼쳐진다. 강인욱 교수 제공
지금도 매년 열리는 몽골인의 여름 축제인 나담의 주요 종목인 말타기, 활쏘기, 그리고 씨름에는 수천 년간 유라시아를 제패한 유목민의 지혜가 있다. 2000년 전 중국 북방을 호령하던 흉노인들에 대한 중국 역사서에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양을 타고 작은 동물을 사냥하는 놀이를 하며 기마술을 익힌다고 돼 있다. 걷기도 전에 아이들은 기마놀이를 하며 말타기를 익혔고, 그 결과 그들의 넓적다리는 기마에 편하게 변형되기까지 했다. 실제로 초원 기마전사의 무덤에선 말 등에 잘 달라붙게 O자형으로 휘어진 다리뼈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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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놀이를 통해 습득한 사냥 실력과 기마술로 그들은 주변 여러 나라를 몰살시키는, 가공할 만한 기마부대가 됐다. 말을 탄 상태에서 화살을 월등한 거리를 날려 보내는 강력한 초원의 전사들을 당해낼 군대는 없었다. 놀이로 양성된 유목민 부대는 마치 오징어게임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부대로 거듭났다. 흉노에서 시작해 몽골, 그리고 16세기까지 존속한 티무르 제국에 이르는 2000여 년간 초원 전사들이 유라시아를 제패한 배경에는 어릴 때부터 이들을 단련시킨 놀이가 있었다.

유목민들에게 놀이는 또 제사의 일부이기도 했다. 수천 년 전 유목민들의 흥겨운 놀이는 지금도 암각화에 잘 남아있다. 그들은 1년에 두 번 조상의 무덤 근처 암각화 터에서 모였다. 여기에서 잔치를 하면서 다양한 놀이로 서로의 능력을 겨뤘다. 한쪽에서는 커다란 가마솥에서 고깃국이 설설 끓고, 그 옆에서는 샤먼의 인도하에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사냥 경연대회도 했다. 중국 신장 스먼쯔(石門子)의 암각화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게임처럼 모든 사람이 춤을 추다 똑같은 포즈로 정지한 듯한 장면이 새겨져 있다. 그뿐 아니라 수많은 중앙아시아의 암각화에서는 마치 현대 미술가 키스 해링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흥겨운 놀이와 활쏘기를 흔히 볼 수 있다. 흥겨워만 보이는 이 놀이와 축제의 뒤에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평생을 유목을 하며 떠돌고 전쟁을 하며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었던 유목민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무용총 수렵도의 비밀


고구려인들의 사냥과 활쏘기 모습을 잘 드러낸 무용총 수렵도 일부(위쪽 사진). 호랑이를 겨눈 전사의 뭉툭한 화살 끝은, 호랑이가 사냥 연습용으로 길들여진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3000년 전으로 추정된 중국 신장 스먼쯔(石門子) 암각화(아래쪽 사진)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게임처럼 모든 사람이 춤을 추다 똑같은 포즈로 정지한 듯한 장면이 새겨져 있다. 강인욱 교수 제공
초원의 놀이는 실크로드에서 고구려 벽화에 이르기까지 널리 확산됐다. 고구려 벽화에 표현된 다양한 씨름과 사냥도가 이를 증명한다. 유목민들과 인접한 고구려인들도 씨름, 사냥, 활쏘기 등을 놀이로 연마하며 강한 전사를 길러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무용총 수렵도는 고구려인들이 연마하던 사냥과 활쏘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 수렵도는 가만히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림 밑쪽 발걸이(등자)를 찬 고구려 기마전사는 사냥개와 함께 호랑이를 사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전사가 겨눈 화살 끝은 뭉툭해서 실제 호랑이를 죽일 수도 없는 것이다. 보통 유라시아 일대 사냥도를 보면 사람을 향해 입을 벌리고 공격하는 호랑이에게 맞서 화살을 겨누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고구려 벽화에서 호랑이는 체면도 없이 사냥개에게 쫓기며 꽁무니를 빼고 있다. 뭉툭한 화살이 이 장면의 진실을 파악하는 실마리다. 야생 호랑이가 아니라 사냥 연습용으로 길들인 것이다.

수렵도 위쪽에는 도망가는 사슴을 파르티안 사법(등 뒤로 돌아서 화살을 쏘는 기법)으로 겨누는 전사가 있다. 도망가는 사슴을 따라가서 사냥하면 될 걸 왜 도망가는 사슴과 반대로 달려가면서 뒤를 돌아서 쏘아야 할까. 원래 파르티안 사법은 말과 함께 살던 유목민들의 전매특허 같은 기술이었다. 페르시아와 실크로드 일대 벽화에서는 사람에게 달려드는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를 피해 도망치는 듯하다가 절체절명의 찰나에 몸을 돌려서 역으로 사냥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긴장의 순간에 반대로 맹수를 사냥하는 전사의 용맹함을 상징한다. 그런데 고구려 벽화에서는 맹수가 아니라 도망가는 사슴을 향해서 쓸데없이 파르티안 사법을 구사한다. 바로, 새로운 활쏘기를 연습한다는 뜻이다.

이뿐인가. 고구려 벽화 속 씨름은 흉노와 중앙아시아에서 널리 유행한 게 도입된 것이다. 서로 샅바를 잡고 하는 씨름(각저)과 마치 스모처럼 떨어져서 싸우는 씨름(수박)은 흉노에서 기원해서 거의 변화 없이 고구려에서도 보이고, 지금도 몽골에서 가장 인기 있는 놀이다.

고구려가 만주에서 강력한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초원의 선진적인 전술과 무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놀이를 통해서 초원의 선진적인 기마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고구려인들의 지혜가 있었다.

게임은 사피엔스의 생존법

놀이도 세상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한다. 인간의 놀이는 오징어게임처럼 몸을 움직이는 것에서 보드게임 같은 추상적인 게임으로도 발전했다. 이 보드게임은 체스나 장기판으로 대표되는데,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고누’가 널리 유행했다. 그 전통은 발해에도 널리 퍼져서 발해의 성터에서는 토기나 기와 쪼가리로 만든 장기 말이 수도 없이 출토된다. 그리고 발해의 고누는 여진족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서 극동지역을 대표하는 보드게임이 됐다. 보드게임은 추상적인 사고를 하며 다양한 전술을 경험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 근대화 시절에 골목길에서 많이 했던 오징어게임이나 구슬치기는 대략 1980년대 초를 기점으로 사라졌다. TV가 널리 보급되고 흙바닥인 골목길이 콘크리트로 포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 대부분의 놀이는 온라인에서 구현된다.

놀이의 형태는 앞으로도 계속 사회를 반영하며 바뀔 것이다. 어떤 놀이가 등장하든 사회를 반영하고, 그 놀이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고 삶의 지혜를 얻어간다는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놀이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이유는 놀이에 숨겨진 가장 보편적인 사피엔스의 생존 방법이 담겨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놀이의 기원#유목민#초원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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