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도 안 보고 9500만원 송금”… 미술 투자 광풍

김선미 논설위원 입력 2021-10-27 03:00수정 2021-10-2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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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 인터뷰
현장에 몰린 방문객들이 미술품을 관람하는 모습.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김선미 논설위원
《#1.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첫날. 전시장에서 만난 김태호 화가(73)는 말했다. “50년 넘게 그림을 그려왔지만 이렇게 미술시장이 달아오른 적이 없어요. 얼마 전에는 모르는 젊은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을 좀 벌어 미술시장에 뛰어들고 싶은데 검색해 보니 선생님 작품에 투자하면 좋다고 한다’고. 작품도 안 보고 아무거나 달라면서 9500만 원을 송금했기에 50호 그림을 보내줬어요.”

#2. KIAF 현장에서 BTS(방탄소년단)의 ‘뷔’,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부인인 이운경 고문, 홍정욱 전 국회의원 부부 등과 마주쳤다. 노란 마스크 차림으로 휠체어를 타고 온 박서보 화백(90)은 함께 사진을 찍자는 젊은층에 연신 둘러싸였다. BTS의 RM, 전지현 등 미술에 관심 많은 연예인이 대거 방문하면서 아트페어는 ‘인싸’들의 놀이터가 됐다.》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만난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미술 저변이 확대되는 건 바람직하지만 시장이 과열되면 질서가 흐려진다”고 우려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한국화랑협회 주최로 13∼17일 열린 제20회 KIAF에서는 미술품이 650억 원어치 팔려 2019년 매출액(310억 원)의 두 배를 넘겼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한 KIAF의 올해 입장객은 8만8000여 명.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작품이 팔렸다는 표시인 빨간 딱지가 곳곳에 붙었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68)과 인터뷰할 동안 그의 휴대전화는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으로 쉴 새 없이 울렸다. 황 회장은 카카오톡의 클립드롭스 플랫폼에서 열리는 쿤(KUN·본명 강연석) 작가의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 경매 현황을 틈틈이 들여다봤다.

MZ세대도 투자 열기

―국내 미술시장이 달아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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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부터다. 3월 화랑미술제 때 꽤 많이 팔리더니 5월 아트부산이 사상 최대 실적이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옥죄니 여러 채이던 집을 팔고 양도세 없는 미술시장으로 흘러온 돈이 많다.”

―그런데 미술시장 분위기가 젊어진 것 같다.

“저변이 상당히 확대됐다. 지금 MZ세대가 난리다. 미리 작품 가격을 검색해 보고 아트페어에 와서 500만∼1000만 원짜리 미술품을 그 자리에서 신용카드로 산다. 작품 값을 깎지도 않는다. 정보기술(IT) 쪽 전문 직업인들은 몇천만 원도 쉽게 쓴다.”

―왜 젊은층이 미술에 관심을 갖나.

“세 가지 이유다. 첫째는 ‘이건희 컬렉션’의 영향이다. 젊은 직장인들이 미술품을 사 모아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게 됐다. 둘째는 코로나로 인해 외국으로 못 나간 데 대한 보복 소비다. 셋째는 RM 같은 인플루언서들이 SNS를 통해 ‘K아트’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MZ세대가 좋아하는 경향이 있나.

“나라 요시토모처럼 ‘무섭고 귀여운’ 작품이 유행하다가 지금은 가볍고 유쾌한 게 트렌드다. 롯카쿠 아야코, 호소카와 마키처럼 일본 만화 같은 그림이 한동안 유행할 것 같다.”

―기성세대는 어떤가.

“KIAF 시작 전에 ‘온라인 뷰잉’ 룸을 열었더니 55∼65세가 의외로 모바일을 통해 많이 봤다. 한 60대 경제 관료는 이번에 왔다가 생애 첫 컬렉터가 됐다. 파워 유튜버 밀라논나의 아들인 민준홍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샀다.”

―NFT 시장의 가능성은.

“쿤과 한승구 작가가 30개 한정으로 NFT 에디션을 내놓은 지 3분 만에 다 팔렸다. 10, 20대가 100만 원 미만 가격에 투자 개념으로 산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과거 싸이월드 시절 도토리와 아이템을 사서 ‘나만의 공간’을 꾸미던 유행이 메타버스 세계에서 NFT 미술품 수집으로 조만간 확장될 수 있겠다 싶었다.

“경매에 휘둘리면 오래 못 가”

국내 유명 화랑인 가나아트는 첫날 KIAF 부스에서 일부 고객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김선우 화가의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30만 원짜리 VVIP 입장권을 사서 ‘오픈 런’했는데도 작품을 살 수 없었다는 불만이다. “김선우가 워낙 핫해서” 사전에 팔렸다는 게 화랑 측의 설명이었지만 고객들은 “그럴 거면 왜 VVIP 티켓을 팔았느냐”고 따졌다. 김선우는 가나아트의 계열사인 서울옥션이 미술 대중화 브랜드로 만든 ‘프린트 베이커리’의 전속작가다.

―요즘 인기 작가 작품은 “없어서 못 판다”고 들었다.

“최근 기이하게 작품 값이 오르는 건 우국원 화가(46)다. 올해 봄에 1000만 원대에 갤러리에 나왔던 그의 작품들이 요즘 거의 ‘억 대’다. 투기 세력이 들어온 건지 의심될 정도다.”

지난달 우 화가의 50호 작품은 서울옥션 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인 1억7000만 원에 낙찰됐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 2009년 656억 원 규모이던 국내 미술 경매시장은 2393억 원 규모(올해 1∼9월)로 커졌다. NFT 사업을 확대하는 서울옥션이 주가 상승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K옥션은 상장을 추진 중이다.

―경매시장이 과열을 부추기는가.

“아는 고객이 넉 달 전 화랑에서 9600만 원에 샀던 작품이 최근 경매에서 4억 원에 낙찰됐다. 시중에 돈이 풀렸던 2005∼2007년 상황과 판박이다. 그런데 당시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 이상으로 작품이 팔렸던 한국 작가들이 요즘 아트페어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작품 가격이 너무 오르면 거래가 형성되기 어렵다.”

―막을 방법이 있는가.

“화랑협회 차원에서 양대 경매회사에 경고문을 보냈다. 화랑을 통하지 않고 경매회사가 작가로부터 직접 작품을 받아다 팔면 ‘시장의 룰’이 깨진다. 경매에 휘둘리면 시장이 오래 못 간다. 160개 회원 화랑끼리 작품을 수수료 없이 거래하는 경매를 새로 만들겠다.”

“K아트 성장시킬 기회로”

이번 KIAF에서는 투기성이 의심돼 한 번에 한 작가의 작품을 두 점까지만 살 수 있게 한 화랑도 생겨났다. “경매에서 비싸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그냥 ‘지르는’ 젊은 세대를 보면 어떤 작품이 살아남을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보여 걱정된다”는 화랑 대표들도 많다.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미술시장이 ‘폭망’했던 전례를 이야기하며 지금의 호황이 버블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지금이 기회’라는 의견도 있다. “한국 미술시장이 중요해져 올해 처음으로 독일에서 파독 간호사 출신의 송현숙 화가를 소개한다”(오시내 독일 슈프뤼트 마거스 갤러리 시니어 디렉터), “BTS와 오징어게임 등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순수문화로 이어진다”(최진희 독일 초이앤라거 갤러리 공동대표), “최근 아트파리 페어에서 브리지트 마크롱 영부인이 이건용 화가의 작품을 극찬했다”(이미금 313아트프로젝트 대표).

황 회장에게 K아트가 가야 할 길을 물었다.

“박서보, 이배, 이건용 등 국내 정상급 화가들이 해외 유명 화랑들에서 전시하면서 K아트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물건도 백화점에서 파느냐, 시장에서 파느냐에 따라 가치가 다르게 매겨지지 않나. 옥석을 가리는 일이 중요해졌다. 작품 감정을 제대로 해내면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키워야 한다. 돈의 노예가 되면 미술품을 통해 절대로 좋은 에너지와 위안을 얻을 수 없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한국국제아트페어#미술 투자 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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