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 5000만원 돼야 출국금지…기준 낮춰야 실효”[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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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도입 ‘3종 조치’ 보완 목소리

김소민 정책사회부 기자
김소민 정책사회부 기자
《이혼 후 자녀 양육비를 주지 않은 아버지 2명에게 11일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국내에서 양육비 미지급 부모가 출국 금지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에 대해선 명단공개 신청도 접수됐다. 만약 명단공개가 최종 결정되면 이름, 나이, 주소 등 신상정보가 12월부터 3년 동안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이런 조치가 가능했던 건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올해 7월부터 시행된 해당 법안에 따르면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해 △출국금지 △명단공개 △운전면허 정지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국가가 양육비 지급 문제를 단순히 사인(私人) 간 채권채무가 아니라 ‘아동 생존권’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개입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법망을 빠져나갈 구멍이 적지 않다”고 토로하고 있다. 해당 법안 시행 후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


○ 감치 요청에도 ‘모르쇠’
“만약 18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절대 아이들을 맡지 않을 겁니다.”

대전에 사는 50대 여성 김모 씨는 18년 전 남편과 이혼했다. 아들과 딸, 자녀 2명은 김 씨가 맡아 키웠다. 이혼 당시 ‘아이 1명당 매월 40만 원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지만 전남편 A 씨는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 A 씨는 제조업체 대표로, 책을 내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등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18년 동안 세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 김 씨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낮에는 옷 장사, 밤에는 대리운전과 그릇닦이 등을 거쳤다. 아이들을 돌볼 시간도 없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자식들한테서 ‘엄마가 뭘 해줬느냐’는 원망을 많이 들었다”며 “내가 왜 애들을 맡아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삶을 산 건지 많이 후회했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계속되는 양육비 미지급에 A 씨를 상대로 양육비 지급 이행명령 신청을 냈다. 그래도 주지 않자 감치명령 신청까지 했다. 감치명령은 양육비 미지급 채무자를 유치장이나 구치소 등에 가두는 제도다. 하지만 신청할 때마다 “집에 사람이 없다”며 번번이 감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올해는 여가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도움을 받았다. 19일 이행관리원 직원 2명이 충남에 있는 A 씨 사업장을 직접 찾아갔다. 경찰관 4명이 영장 제시 후 집행 고지를 한 뒤에야 A 씨는 3600만 원을 보내왔다. 하지만 이 역시 1억 원이 넘는 전체 양육비의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 금액을 받기 위해선 이행명령 신청부터 똑같은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 허울뿐인 양육비 지급 명령
A 씨 같은 사례가 생기는 건 양육비 지급 명령의 강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행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양육비 이행률은 36.1%로 집계됐다. 양육비를 한 번이라도 보낸 경우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반대로 양육비를 줘야 할 부모 중 63.9%는 단 한 번도 돈을 보낸 적이 없다는 뜻이다.

현재 양육비를 보내지 않는 부모에게 취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제재가 바로 감치명령이다. 최대 30일까지 경찰서 유치장, 교도소, 구치소 등에 가둘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집행되지 않는다. 통상 장기 채무자는 위장전입 등으로 자신의 거주지를 숨긴다. 감치명령은 법원 명령 후 6개월 안에 집행해야 한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 입장에선 6개월만 피해 있으면 제재를 피할 수 있는 셈이다.

이행관리원 관계자는 “통상 채무자 주소지가 자치구나 도로 이름까지만 나온 경우가 많다”며 “사람을 찾기 위해선 건물 임대인이나 주민을 통해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감치명령이 집행된 후에도 여전히 양육비를 보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현장 설명이다. 그만큼 양육비 지급의 실효성이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 양육비 미지급 ‘3종 조치’ 도입

이처럼 기존 제도의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양육비 미지급과 관련된 이른바 ‘3종 조치’가 새로 도입됐다. 올해 7월 13일부터 법원의 감치명령을 받고도 양육비를 보내지 않으면 출국금지, 명단공개, 운전면허 정지 등 3가지 조치가 가능해진 것이다.

출국금지는 양육비 채무가 5000만 원 이상인 경우 취해진다. 또 채무 3000만 원 이상이면서 최근 1년 동안 출국 횟수가 3회 이상 또는 해외 체류 일수가 6개월 이상인 경우 내려진다. 11일 국내 첫 양육비 미지급 출국금지 조치를 받은 2명은 채무가 각각 1억2560만 원과 1억1720만 원에 달한다.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공개도 이뤄진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이름, 나이, 직업, 주소, 채무액, 채무기간 등을 여가부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제도다. 2018년부터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한 ‘배드파더스’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 공개에 나서기로 하면서 20일 문을 닫았다.

운전면허 정지는 본인은 자가용을 운행하면서 양육비를 ‘나 몰라라’ 하는 부모의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최장 100일 동안 정지할 수 있지만 택시·버스운전사 등 자동차를 생계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제외된다. 25일 여가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각 조치 신청 대상자 수는 출국금지 3명(2명은 출국금지 상태), 명단공개 6명 등이다.

○ “취지 좋지만 세부사항 더 보완해야”
여성계 등에선 양육비 미지급자 출국금지 등 3종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은 진일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례로 출국금지는 그동안 형사 재판을 받고 있거나, 세금 5000만 원 이상 체납자에게만 취하던 조치다. 그만큼 국가가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러 예외 조치 탓에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 나온다. 생계 목적으로 운전면허를 사용할 경우 운전면허 정지의 예외로 삼은 게 대표적이다. 또 출국금지가 되더라도 치료 등을 위해 출국할 때는 예외를 인정해 준다. 출국금지 대상이 되는 양육비 미지급액 5000만 원 역시 지나치게 높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혼 후 홀로 아이 한 명을 키운 B 씨는 “양육비가 월 50만 원인데 미지급액이 5000만 원까지 쌓이려면 8년 이상 걸린다”며 “그사이 아이는 모두 자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명단공개 역시 이름과 나이를 제외한 주소, 직업 등이 구체적이지 않아 효과가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여가부 역시 일부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가부 측은 “평균적인 양육비 미지급액 정보를 모으는 중”이라며 “정보가 취합되는 대로 출국금지 금액의 적정 기준선을 다시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소민 정책사회부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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