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용석]불안감 걷어 내는 누리호의 한 걸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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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룰이 예측 불허인 현재의 삶
성공률 낮아도 도전하는 데 답이 있다

김용석 산업1부장
김용석 산업1부장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극적으로 만든 핵심적인 장치가 있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어떤 게임을 하게 될지 참가자들이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목숨을 걸어야 할 게임의 룰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게임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의 불안감이란….

세계 1억4000만 명이 이 드라마에 감정이입한 이유 중 하나는 현재의 보편적인 삶이 어느 정도 그와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게임의 룰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2년 전엔 상상도 못 했을 마스크 낀 삶을 살고 있고, 그 사이 성업이던 동네 노래방은 죄다 문을 닫았다. 자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벼락부자와 벼락거지가 순식간에 엇갈렸다.

기업과 국가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기후변화로 공장이 멈춰서고 삶이 위협받았다. 수백 년 성장 공식의 기본이었던 화석연료 의존을 끊어야 한다는 과제가 눈앞에 다가오자 자원 가격이 요동쳤다. 디지털 자산의 가치 상승 등 기존 질서, 즉 게임의 룰이 흔들리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모든 것에 새로운 가격표가 붙고, 과거 경험을 벗어나는 빠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머지않은 훗날 개인과 기업은 물론 많은 국가의 운명이 엇갈린 시기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화를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관건은 적응할 힘을 가지고 있느냐가 될 것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면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각 분야 세계 1등 기업을 가지고 있어야 환경 변화를 직접 주도하거나 변화에 적응력을 높일 수 있다.

변화 때문에 커진 불안감을 해소하는 궁극적인 길은 모두에게 목돈을 나눠 준다든지, 소득을 보장한다든지 하는 ‘100%의 안전’을 언급하는 약속에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낮은 성공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취하는 데 달려 있다.

27%의 성공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 21일 누리호의 첫 우주 발사가 그랬다. 누리호 겉 표면의 약 80%는 최대 3mm 두께에 불과한 알루미늄 합금판으로 이뤄져 있다. 추진체 탱크의 겉면이다. 두꺼운 종이 한 장 수준의 합금판이 안으로는 대기압 4∼6배의 압력을 견디고 밖으로는 지상 700km까지 비행 중 가해지는 압력과 충격을 견뎌야 한다. 누리호 38만 개의 부품 중 하나라도 이 같은 극한의 조건을 견뎌내지 못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우주 발사는 실패로 돌아간다.

문제는 이런 구조물과 부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세상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용접하는 방법부터 부품을 제어하는 기술까지 직접 찾아내야 한다. 11년 7개월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우주를 상상하며 직접 수많은 시험을 거듭해 걸어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그 길의 끝, 첫 발사의 성공률은 27%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시도한 국가들의 통계가 그렇다. 미국, 중국, 일본 모두 첫 발사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의 첫 우주발사체 ‘람다 4S’는 4차례 실패 후 5번째 가서야 성공했다.

누리호는 21일 첫 시도에서 73%의 실패 가능성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게임의 룰 체인저가 되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는 길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데는 확실한 성공을 거뒀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에의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100% 보장된 길이라는 얘기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



#누리호#성공률#첫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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