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굴, 한국 바다의 선물[김창일의 갯마을 탐구]〈68〉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입력 2021-10-21 03:00수정 2021-10-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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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패총에서 굴 껍데기 비중은 압도적이다. 여타 조개류와는 달리 눈에 잘 띄고, 숨거나 도망갈 수 없으므로 고대인들이 손쉽게 채취할 수 있었다. 패총을 마주할 때면 궁금증이 맴돌곤 한다. 수천 년 전 패류 독소에 중독되거나 사망한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굴 섭취로 인한 사망 기록은 조선시대에나 나타난다. 성종 24년 웅천(熊川)에서 굴을 먹고 24명이 사망했다. 뒤이어 연산군 2년에도 웅천에서 사망자가 나왔다. 각 지방 읍지를 엮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기록돼 있다. 패류 독소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 3월부터 발생해 6월 중순경 해수 온도가 18도 이상 상승하면 패류 독소는 자연 소멸한다.

웅천은 지금의 진해만과 가덕도 일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굴, 대구 등을 이곳 토산으로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굴이 풍부했다. 특히 가덕도 해안은 파도가 적은 내만이면서 조류 흐름이 원활해 물이 깨끗하다. 또한 담수 유입량이 적당하고, 플랑크톤 번식에 필요한 영양염류가 풍족해 굴 생장에 좋은 조건이다. 이런 이유로 1923년에 최초로 규립식 살포법을 가덕도 갯벌에서 실험해 굴 양식에 성공했다. 올해 2월, 굴을 양식하는 어민을 만나기 위해 가덕도 부속섬인 눌차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바다는 온통 굴 종패 양식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도로는 마주 오는 차를 비켜나기 어려울 정도로 좁았다. 눌차도에서 대를 이어 굴 종패 양식업을 하는 고모 씨는 굴 껍데기 때문에 그나마 땅이 많이 확장됐단다. 배출되는 굴 껍데기를 갯가에 쌓아둔 것이 자연스레 매립되면서 육지가 됐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땅이 마을 원래 면적보다 넓다고 말했다. 유심히 살폈더니 텃밭과 도로는 물론이고 굴 껍데기 매립지 위에 주택까지 들어서 있었다. 신석기 패총 수백 개 합친 규모의 현대판 패총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굴 판매장을 들렀다. 주인장께 원산지를 물었더니, 가덕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주인장을 바라보며 예전엔 굴 양식을 했지만, 지금은 종패 양식만 하는 걸로 아는데 무슨 말씀이냐고 대거리를 했다. 주인장의 말인즉슨 가덕도에서 태어난 치패가 통영 바다에서 어른이 돼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원산지는 가덕도가 아니겠냐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이었다. 한때 전국 굴 종패 70∼80%를 가덕도에서 생산한 적이 있다. 그러니 통영과 전남 등지에서 양식하는 굴의 고향이 가덕도라는 말이 영 엉뚱한 답변은 아닐 터. 가덕도 바다에서 태어나서 통영 바다에서 생장해 가덕도에서 판매된 생굴을 들고 기분 좋게 집으로 향했다.

‘굴은 보리 이삭 패면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굴의 산란기는 5∼8월로 독소가 생성돼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으며, 육질이 떨어지고 아린 맛이 강하다. 그래서 따뜻한 계절에는 굴을 캐지 않는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제철 굴을 맛볼 시기가 왔다. 우리 바다는 굴 생육조건에 적합한 환경으로 생산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런 까닭으로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굴을 즐길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바다 향 가득 머금은 싱싱한 굴을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은 한국 바다가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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