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21세기[임용한의 전쟁사]〈183〉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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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철수 작업이 한창이던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테러가 발생하고, 한 달 뒤 북부 쿤두즈주 이슬람 사원에서 이슬람국가(IS) 호라산의 자폭 테러가 발생해 18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살면서 체험한 경험적 진리에 의하면 근거 없는 낙관은 실현되는 법이 없는데, 이유 없는 불길함은 꼭 현실이 된다. 현재 상태에서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가장 긍정적인 진행은 탈레반 정권이 이전과 달리 유연성을 발휘해 국제 원조와 요구에 호응하고 내정에서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는 태도를 발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망은 소설에 가깝다. 최악의 가정은 탈레반 정권이 분열하고 그 와중에 IS가 최대 세력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심술궂은 악담 같지만, 첫 번째 가정보다는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난달부터 서방 국가들과 일본은 갑자기 아프가니스탄에 수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주민들의 삶이 최악의 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일 수 있지만, 사회 안전망 붕괴가 탈레반 정권 분열과 IS 세력 확장의 토양이 돼 가고 있다는 위기감을 포착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산 넘어 산인 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IS는 왜 이토록 무자비한 테러에 열중하는 걸까? 첨단 무기와 강력한 군대를 지닌 강대국을 상대하기 위한 약한 자의 유일한 저항 수단이라는 주장도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어떤 이들은 종교적 열정, 광신 때문이라고 한다. 글쎄 가끔 소수의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열정적인 신도들도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신앙 하나로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할 정도로 숭고하지 않다. 좌절된 꿈과 욕망이 분노와 선동으로 가공돼 극단적 행동으로 분출되는 것일까.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 문제는 IS와 같은 극단주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현재 전 지구를 덮고 있는 21세기의 기저 현상이다. 이제 모두가 이 문제를 더 진지하고 간절하게 직시해야 할 시대가 됐다.



임용한 역사학자


#테러#2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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