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둘러싼 과시와 허영 사이…수조 원대 명화들을 한 캔버스에 담은 작품[김민의 그림이 있는 하루]

김민 기자 입력 2021-10-16 11:00수정 2021-10-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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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백 개 화랑들이 한 자리에 모여 미술 작품을 판매하는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이번 주 열렸습니다. VVIP 프리뷰가 열린 첫 날이 지나고 갤러리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통적 컬렉터보다 새로 보이는 컬렉터가 많고, 구경보다는 실질적인 구매를 하려는 사람들도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침체됐던 미술 시장에는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렇게 들뜬 분위기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단기적 유행의 흐름을 탄 키치한 작품을 찾는 움직임만 과도하다거나, 코인이나 부동산을 대하듯 그림을 보는 경향이 갈수록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림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도 이 그림 갖고 있어!”하고 자랑할 아이템을 찾는 것 같다는 거죠.

그런데 21세기 한국에만 그런 컬렉터가 있을까요? 18세기 영국의 왕족도 이런 과시욕을 갖고 주문한 그림이 있습니다. 왕궁에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명화만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깨는 그림이죠. 오늘은 그 작품을 만나보겠습니다.

● 메디치 컬렉션을 갖고 싶었던 영국 왕비

저는 이 그림을 보고 이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가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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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서 소장한 그림치고는 사이즈가 작습니다. 일반 가정집에도 마음먹으면 걸 수 있을 정도인데 이 작은 캔버스 안에 정말 많은 그림과 조각이 우겨 넣어져 있습니다. 대충 훑어봐도 미술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면 알아 볼만한 명화들이 여러 점 스쳐 가구요. 그림만 있는 게 아니라 조각 작품 까지도 빽빽이 들어 차 있습니다.

라파엘로부터 루벤스에 티치아노까지. 여기 있는 작품들을 다 합한 가치가 수조 원은 거뜬히 넘을 것 같은데요. 이 귀한 명화들을 한 캔버스에 담아서 감상할 수 있으니 주문자가 ‘가성비’를 따진 것이 아닐까 상상을 해 보게 되는 것이지요.

놀랍게도 이 그림의 주문자는 18세기 영국의 왕 조지 3세의 부인 샬롯 왕비입니다. 1764년 샬롯 왕비는 독일 출신의 화가 요한 초파니에게 ‘피렌체 갤러리’를 그려달라고 주문합니다. 당시 런던에 있었던 초파니는 1772년 여름 피렌체로 떠나는데요, 영국 왕실 컬렉션에 따르면 그림을 그리는 대가로 300파운드를 받았다고 합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0억 원 정도입니다. 적지 않은 돈이죠. 그러나 당시 잉글랜드는 그림 자체가 귀했으니 이런 가격이 책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 그림 속 그림들
샬롯 왕비는 어떤 그림들이 갖고 싶어 이 작품을 의뢰한 것일까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주요 명화 몇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단에 가장 잘 보이는 그림은 티치아노의 유명한 작품, 우르비노의 비너스입니다. 이탈리아 우르비노의 귀족이 주문한 것으로 그의 결혼을 기념했다는 설, 혹은 당대 유명했던 매춘부인 자페타를 그린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전형적인 라파엘로 스타일의 성모자상도 볼 수가 있고요. 이 그림은 라파엘로가 자신의 친구 로렌초 나시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그런데 1548년 나시의 집이 지진으로 무너지고 이 그림도 17조각으로 부서졌다고 하는데요. 이 조각을 당시 곧바로 붙였지만 갈라진 조각을 볼 수 있었고, 2008년 우피치갤러리에서 재 복원 작업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그림은 루벤스가 등장합니다. 왼쪽부터 화가 피터 폴 루벤스, 그의 형 필립 루벤스, 철학자 유스투스 립시우스, 왕실의 관리 요아네스 워베리우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뒤편에는 헬레니즘 양식으로 만들어진 세네카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루벤스는 유명한 화가이자 외교관이었는데요. 당시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 그리스 고전을 공부했던 유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스 홀베인이 영국의 궁정화가였을 때 그린 초상으로 사우스웰은 영국의 추밀원 의원이었습니다. 17세기 청교도 혁명을 일으킨 올리버 크롬웰의 열렬한 추종자로, 후에 그의 초상화는 영국 왕실 컬렉션을 벗어나 메디치 가문에 선물로 전달되었습니다.

● 빽빽한 명화와 조각을 재현하다
비록 작은 그림이지만 그 속에 다양한 시기의 다른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우선 깔끔하게 정돈된 라파엘로부터 굽이치는 루벤스, 굉장히 사실적이고 정교한 홀베인까지 모두 다 다른 그림체입니다.

화가 초파니는 이들 그림을 모두 재현하고, 거기에 액자까지 그리며 또 조각까지 그리느라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1772년 시작해 5년 뒤인 1777년 그림을 마무리했고, 1779년 이를 들고 잉글랜드로 돌아옵니다.

샬롯 왕비가 이 그림을 주문한 이유를 저는 ‘과시욕’이라고 생각합니다. 초파니는 샬롯 왕비를 비롯해 당시 왕족들의 초상화를 다수 그렸는데요. 아래 그림이 왕비의 초상화입니다.


이런 초상화도 그릴 수 있고, 또 왕비가 좋아할 만한 주제를 의뢰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먼 피렌체에 있는 그림을 똑같이 베껴 달라고 한 것은 “나도 저들이 가진 걸 갖고 싶다”는 과시욕으로 저에겐 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초파니는 자신이 본 우피치 연단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메디치 컬렉션의 유명 작품들을 적당히 짜깁기해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 것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죠. 그러니 샬롯 왕비는 우피치 연단을 사진 찍듯 재현한 그림을 원한 게 아니라, 유명한 명화가 한 자리에 있는 그림을 원했던 것입니다.

당시 유럽 귀족들은 그리스 고전에 대한 로망을 갖고 이를 공부했으며, 상류층 자제들은 유럽을 돌면서 로마의 고전 건축을 감상했다고 하죠. 그런 그리스를 표방한 메디치 가문에 대한 환상, 나도 그들처럼 역사와 교양을 가진 왕족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이런 그림을 낳게 한 것이지요.

그럼 1779년 돌아온 그림을 왕비는 좋아했을까요?

왕실 컬렉션의 기록에 따르면 초파니는 실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을 보시면 그 속에 그림과 조각도 정말 많은데, 그 가운데 인물도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의 중간 과정을 본 한 귀족은 친구에게 편지를 통해 “왕비가 거금을 지불했는데 그림 속에 쓸데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걱정을 했다고 해요. 결국 이 그림은 1819년이 되어서야 버킹엄 궁의 서재에 잠시 걸렸다고 합니다. 초파니는 이 그림 이후로 왕실과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 그림 속에 드러나는 생생한 심리
지금으로 본다면 샬롯 왕비의 행동은 ‘모조품’을 주문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이것을 현재의 잣대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림 한 점을 통해 당시 왕족과 영국 사회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는 것이 재밌는 포인트입니다.

막연하게 상상하기로 유럽의 왕족들은 늘 최고급의 무언가에 둘러싸여 있었을 것만 같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유럽 여행을 가면 버킹엄 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베르사유 궁전을 관람하며 화려함에 감탄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하고, 과시하고 싶어 하며 때로는 그것이 허영심이 되기도 했던 것이지요.

특히 영국은 18세기까지 제대로 된 화가가 없었을 정도로 예술 불모지였습니다. 왕족이 독일 출신 화가에게 그림을 의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영국 미술사를 다룬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에 가보면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의 시작은 플레미시 화가가 궁정 초상을 그리고, 그것이 조금씩 발전해가면서 자생적인 미술이 생겨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영국의 왕비는 자신의 취향의 그림을 주문하기보다 다른 나라의 그림을 부러워하고 그것을 갖고 싶어 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한 장에 그림에는 이렇게 글로 표현되지 않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이 숨겨져 있답니다. 여러분도 오래 전 그림을 볼 때 ‘명화’라고만 보고 지나치지 마시고 자세한 모습들을 한 번 찬찬히 뜯어보세요. 그러면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사가 펼쳐질 것입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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