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보다 발그레한 유혹… 가을이 내 마음 불질렀다

글·사진 평창=전승훈 기자 입력 2021-10-16 03:00수정 2021-10-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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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아트로드]강원 오대산 소금강 계곡
활엽수종 많아 노란 단풍 지천
기암괴석 즐비 소금강의 비경
희귀종 다수 간직한 한국자생식물원
오대산 노인봉 등산로에 떨어진 꽃처럼 빛나는 낙엽. 빨간색, 노란색, 갈색 단풍잎 사이로 초록색 이파리가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햇단풍’, ‘햇낙엽’이라는 말이 있다면 어울릴까. 강원 오대산 노인봉 정상 부근에서 만난 단풍은 생기(生氣) 있게 반짝반짝 빛났다. 빨강, 노랑 단풍잎과 낙엽 사이로 고개를 내민 싱싱한 초록잎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심지어 한 이파리 안에서도 초록색과 빨간색이 공존하는 요즘이다. 늦가을이나 겨울에 만나는 거무튀튀한 낙엽과는 다른, 마치 꽃이 막 떨어진 것 같은 햇단풍, 햇낙엽이다. 오대산과 설악산 정상에서 시작된 단풍은 이번 주말부터 차츰 전국으로 남하하며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 붉은 설악산, 노란 오대산

소금강계곡 낙영폭포.
강원 오대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소금강 계곡은 천하절경의 단풍비경을 자랑한다. 소금강은 1970년에 국가지정 ‘한국명승지 제1호’로 지정된 곳이다. 지난 주말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오대산 노인봉 정상∼소금강계곡(총 13km)을 걸었다.

노인봉(해발 1338m)은 진고개 정상 휴게소(960m)에서 차를 세우고 올라가면 1시간 반 정도면 오를 수 있다. 강원 평창군에서 강릉시 연곡면으로 넘어가는 진고개는 옛날에 도로가 포장되기 전에는 비가 오면 고갯길이 온통 진창이 된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날도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고개를 넘지 못하고 간간이 비를 뿌렸다. 비에 젖은 갓 떨어진 단풍잎이 더욱 싱그러웠다.

찬 바람이 불면 나무는 잎으로 수분과 영양소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입과 가지 사이에 ‘떨켜’를 만들고 엽록소 생산을 멈춘다. 단풍은 녹색의 엽록소가 줄어들면서 숨어있던 카로틴과 크산토필, 안토시아닌 등의 다른 색소가 빛을 발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카로틴과 크산토필은 노란색 단풍을, 안토시아닌 색소는 붉은색 단풍을 만든다. 설악산과 북한산은 붉은색을 띠는 당단풍 나무가 많고, 오대산은 산 전체가 다양한 활엽수종으로 돼 있어 오렌지색과 노란색으로 물든 은은한 단풍이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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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해발 1338m인 노인봉까지는 길이가 4.1km. 어르신들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순탄한 코스다. 등산을 시작한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넓은 평야가 나타났다. 과거 화전민들이 살았다는 ‘진고개 고위평탄면’이다. 탁 트인 고원지대에 황금색 초원이 가을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노인봉 정상에 올라가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황병산(1407m)을 비롯한 연봉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노인봉은 기묘하게 생긴 화강암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어 멀리서 바라보면 백발노인의 모습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동해바다가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내 명승 1호 소금강 계곡

노인봉에서 소금강 계곡까지 총 9.6km 구간은 해발고도 1200m가량을 내려오는 하산길이다. 소금강의 옛 이름은 청학산(靑鶴山). ‘청학’이란 젊음과 희망을 상징하는 푸른빛의 학이다. 상상 속의 새인 청학이 울 때는 천하가 태평하다고 한다. 지리산 청학동처럼, 청학산은 인간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상향의 세계다. 청학산이 ‘소금강(小金剛)’으로 불리게 된 것은 율곡 이이 선생(1536∼1584)의 ‘유청학산기(遊靑鶴山記)’에서 빼어난 산세가 마치 금강산을 축소해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소금강 계곡 광폭포 주변 단풍.
노인봉에서 급경사 구간을 1.7km 정도 내려온 뒤 만나는 낙영폭포부터 소금강 계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광폭포, 백운대, 만물상, 구룡폭포, 식당암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무릉도원을 방불케 하는 기암괴석과 폭포가 즐비하다.

넓고 평평한 바위가 하얀 구름 모양으로 겹쳐 있는 백운대(白雲臺)를 지나면 물도 많아지고 다양한 형태의 계곡이 펼쳐진다. 우뚝 솟은 바위가 보는 각도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만물상(萬物相), 연꽃 모양의 물웅덩이가 있는 연화담(蓮花潭),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폭포(九龍瀑布),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밥을 먹었다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식당암(食堂巖)까지…. 계곡에 놓인 다리를 이리저리 건너며, 구절양장 굽이굽이 선계(仙界)를 구경하다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진고개에서 소금강 계곡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총 14km의 여정인 데다, 해발고도 차이도1200m가 넘는 하산길이다. 팍팍한 다리를 두드리며 쉽지 않은 돌밭길을 걸어야 하지만 황홀한 가을 풍경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소금강계곡 입구에서 구룡폭포 구간(3km)까지만 덱길을 왕복하며 절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대산의 가을 단풍은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선재길’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소금강 계곡보다 규모는 작지만 울창한 숲속 길과 계곡을 넘나드는 선재길은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는 단풍 명소다.

○한국 자생식물원에서 만난 작가 조정래

황금색 초원 위에 변화무쌍한 구름을 볼 수 있는 진고개 고위평탄면.
월정사 입구 삼거리에서 진고개 올라가는 초입에는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이 있다. 국내에 살고 있는 자생식물 4500여 종 중 희귀종인 1500여 종을 수집해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요즘 수목원에는 가을꽃이 한창이다. 노오란 산국, 흰색 산구절초, 보라색 해국, 두메부추가 가을 햇살에 활짝 피어 있다. 영락없는 딸기 모양의 산딸나무 열매와 마가목 열매도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이 식물원은 김창렬 원장(73)이 1989년부터 한국의 멸종위기 토종식물의 유전자 보호를 위해 꾸며 온 국내 1호 사립식물원. 올해 7월 김 원장은 7만4000여 m² 규모의 부지와 건물 5동, 자생식물까지 모두 2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식물원을 산림청에 기증했다. 자생식물원에는 꽃과 나무뿐 아니라 수많은 야외 조각품과 갤러리가 잘 꾸며져 있고, 북카페 ‘비안’에는 2만 권이 넘는 책이 있어 커피를 마시며 독서를 할 수 있다.

10일 한국자생식물원 북카페에서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소설가 조정래(78) 초청 강연회가 열렸다. 2년 전부터 오대산 월정사 아래 집필실에서 글을 써 온 조 작가는 한국자생식물원에 5000여 권의 장서를 기증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오대산 생활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투명하고 맑음이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지요. 사시사철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도 인상적입니다. 집사람이 자다가 깨서 ‘여보, 지금 비 와?’ 하고 물어요. 그럼 제가 ‘아, 이 사람아, 물 흘러가는 소리야’ 하고 대답하죠. 자연 오케스트라의 교향악이 들리는 이곳은 최고의 힐링 안식처입니다. 평창은 겨울에는 영하 20도 아래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여름에만 6개월씩 강원도민으로 2년째 살고 있어요. 하루에 보통 6000보에서 1만 보씩 걷다 보니 이 늙은 몸과 다리에 새로운 힘이 솟아오릅니다. 제 마지막 작품으로 불교의 사상을 토대로 한 소설을 준비 중인데, 이곳 오대산을 무대로 쓸 예정입니다.”

○가볼 만한 곳

진고개식당 곤드레밥.
진고개 정상에서 국도 6호선을 타고 강릉 연곡 방면으로 가다가 있는 ‘송천약수’는 탄산과 철분 성분이 많이 함유돼 톡 쏘는 맛과 약간 비린 듯하지만 상큼하고 시원한 맛이 매력이다. 피부병과 위장병, 소화불량, 숙취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약수터 바로 옆에 물이 흐르는 계곡과 마당바위가 있어 드라이브하는 여행객들의 쉼터가 된다. 월정사 입구에 있는 ‘진고개식당’은 계곡 뷰를 바라보며 곤드레밥을 먹을 수 있다. 더덕구이, 산채나물이 강원도의 향을 느끼게 한다.




글·사진 평창=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오대산#강원도#소금강#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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