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전 총리 “우리 국민 모두 행복했으면…” 유언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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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0월 15일 1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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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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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 모두 행복했으면…”

13일 오전 10시 58분경. 서울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있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부인과 두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같은 말을 남긴 채 영면했다. 불과 71세의 나이에.

이완구 전 총리의 별세소식이 알려지자 그의 고향인 충남 홍성과 청양, 그리고 이 전 총리가 충남경찰청장과 충남도지사, 국회의원 등을 지내면서 인연을 맺었던 지인들은 그와의 과거 일을 되새기며 깊은 슬픔에 빠졌다.

고인은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며 충남도지사직까지 내려놓을 정도로 결단력도 강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온화하고 다정하면서도 섬세한 ‘이웃 형님’처럼 기억되고 있다,

1995년 고인이 충남경찰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그는 기자실에 자주 들렀다. 새벽에 출근해 경찰서와 종합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취재해야 하는 신참 기자들에게는 “새벽에 출근하는 경찰출입 기자들이 끼니를 굶어서는 안 된다”며 컵라면을 박스 채 기자실에 비치하도록 했다.

또 경찰청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은 한 민원인이 차안에 두었던 돈을 잃어버렸다며 민원실에 항의하는 모습을 우연히 본 뒤 “경찰청장인 내가 모든 책임이 있다”며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네준 일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충남도지사로 재직할 당시에는 대전 중구 대흥동에 있는 도지사 관사로 후배 부부들을 종종 불러 만찬을 베풀기도 했다. 그럴 때에는 항상 이 전 총리의 부인인 이백연 여사가 직접 상차림을 맡기도 했다.

제 15·16·19대 국회의원과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거쳐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2월 국무총리에 임명된 후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사건이 터지자 그의 청렴성을 입증해주려는 응원 증언이 잇따르기도 했다.

고인의 고향 후배인 전긍수 씨(63·대전 거주·사업)는 “2013년 4월 치러진 충남 부여·청양 재 보궐 선거에 출마한 친구의 형인 이 후보에게 후원금을 전달했으나 다음날 되돌려 받았다”며 “나중에 전화로 ‘긍수야 네 성의는 그 이상이다’라며 고마워했다”고 회고했다.

이 전 총리의 충남 홍성군 광천읍 덕명초등학교 동창인 최건환 씨(71·전 경주월드리조트 대표)는 “고인은 공직 재직 시절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 등 네 분의 상을 치르고 두 아들의 혼사를 치루면서도 한 번도 부의금이나 축의금을 받지 않았다”며 “13일 빈소를 방문했을 때에도 부의금을 준비했으나 유가족들이 극구 사양했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가족과 함께 경주에 놀러왔을 때 ‘친구에게 주고 싶어 샀다’며 예쁜 티셔츠를 하나 사왔더라”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전과 충남 세종지역 유력 정치인들과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그를 애도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지역과 나라를 위해 경험과 경륜을 펼치실 충분한 나이인데 병마로 유명을 달리하신 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춘희 세종시장도 추도사를 통해 “세종시 발전을 걱정하고 도움을 주셨던 고인의 별세가 크나큰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국회의원과 충남도지사 재직 시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보좌했던 이경현 홍성신문 대표(57)는 “지난해 홍성의 아파트생활을 접고 인근 덕산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총리님이 직접 찾아와 ‘자연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순리’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한편 고인이 운명하기 직전 남긴 유언이 가족들에 의해 알려졌다.

가족들은 고인이 13일 오전 조용하게 숨을 몰아쉬며 “우리 국민 모두 행복했으면…”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밝혔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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