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이재국의 우당탕탕]<59>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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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장례식장에 노래가 울려 퍼졌다. 고인이 된 친구가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였다. 가수 매니저 생활을 오래 했고 최근에는 제작자로 잘나가던 친구였는데,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결혼도 안 한 친구였기에 선·후배 매니저와 친구들이 상가를 지키고 있었다.

다들 가버린 친구를 추억하며 육개장에 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그때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친구가 평소 좋아했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라는 노래였다. 모두가 슬픈 마음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를 좋아했고, 그래서 가수 매니저를 했고, 음반까지 제작했던 친구에게 살아남은 자들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장례식장 관계자라는 분이 와서 노발대발 화를 냈다. “장례식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는 엄숙한 곳입니다. 다른 빈소는 슬픔에 잠겨 있는데 노래를 부르다니 제정신입니까!”

우리는 모두 당황했다. 박수를 치며 신나는 노래를 부른 것도 아닌데 이게 이렇게 화를 낼 일인가? 우리는 장례식장 관계자에게 사과했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분은 용납이 안 된다며 또 노래를 부르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엄포를 놓고 사라졌다. 장례식장에서 노래를 부른 건, 잘한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혼자 사용하는 곳도 아니고 여러 빈소가 함께 운영되는 병원 장례식장에서 노래를 부른 건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추모 방식이 똑같아야 하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을 보고 마음이 울컥했다. 밝게 웃고 있는 영정 사진 앞에 누군가 햄버거 세트를 올려놓고 무릎 꿇고 울고 있는 사진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영정 사진 앞에 햄버거 세트를 올려놓고 울고 있을까. 사연인즉 고인이 어느 날 SNS에 “저에게 고맙거나 미안한 일이 있으면 햄버거 두 개를 사주시면 됩니다”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기억하고 있던 후배가 미안하다며 햄버거를 사와서 영정 사진 앞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햄버거면 어떻고, 육개장이면 어떻고, 노래면 어떻고, 춤이면 어떤가. 예전에 함께 공연했던 비보이가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적이 있는데 그때 동료 비보이들이 장례식장에서 비보잉을 했다. 음악을 틀어놓거나 조명을 켠 무대는 아니었지만 누군가 “형 가는 길에 우리가 멋지게 춤 한번 추자”라고 제안했고, 비보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최선을 다해서 춤을 췄다. 그 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춤이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어떤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음식을 먹으면 울컥하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날이 오면 장례식장에는 작게라도 이상은이 부른 ‘삶은 여행’이라는 노래를 틀어놓고, 평소 아내가 맛있게 끓여주던 차돌 된장찌개 한 그릇 놓아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장례식장#친구#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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