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텃밭 가꾸고 희귀종 ‘식물 재테크’…‘아파트 농부’ 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2일 15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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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정나현 씨(27·여)는 최근 베란다에서 식용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아파트 농부’다. 바질 잎은 뜯어 감바스로 요리하고 로즈마리는 연유 커피에 올려 향긋함을 더하는 데 쓴다. 이 씨는 “식물을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잘 길러서 빵이나 방향제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재택이 길어지며 작은 화분을 들이기 시작한 게 이젠 작은 텃밭이 됐다”고 말했다.

길어지는 ‘집콕’ 생활로 집안 곳곳을 반려식물로 꾸미는 ‘플랜테리어(플랜트+인테리어)’가 진화했다. 공기정화식물, 다육이처럼 키우기 쉬운 반려식물을 창가에 두는 수준을 넘어 독특한 식물을 수집하고 손수 분갈이까지 하는 게 일상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반려식물 인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2일 온라인쇼핑업체 롯데온에 따르면 7월부터 9월까지 식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5% 급증했다. 식물을 오래, 더 건강하게 가꾸기 위한 각종 용품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증가했다. 같은 기간 원예도구(172%), 화병·화분(155%), 흙·비료(114%) 매출은 줄줄이 두 배 이상 늘었다.

플랜테리어를 위한 식물 종류도 보다 다양해졌다. 기존 공기정화식물, 다육이 등 관리가 편한 식물 위주로 키웠다면 최근엔 독특한 생김새의 수경재배식물(220%), 동양란(199%)이 급부상했다. 롯데온 관계자는 “최근 고객이 찾는 식물 종류가 다양해지고 분갈이, 영양제, 토분 등 관련 제품 판매도 크게 늘었다”며 “화분째로 구매해 그대로 키우기만 했던 것과 달리 식물을 가꾸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자텃밭 활용 예시.(강북구 제공) © 뉴스1
상자텃밭 활용 예시.(강북구 제공) © 뉴스1
허브, 채소 등 식용 식물을 길러 식탁에 올리는 ‘아파트 농부’도 많아졌다. 식물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 단순 시각적 차원에서 직접 재배한 먹거리를 식탁에 올리는 자급자족 차원으로 넓어진 것이다. 이에 빛과 온도, 바람 등을 채소 종류에 따라 자동으로 최적화하는 식물재배기가 성장세다. 교원 웰스에 따르면 지난해 식물재배기 판매량은 전년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고 올해 연말까지도 지난해 두 배 수준으로 판매될 전망이다.

식물에 대한 관심이 늘며 중고거래 앱에선 고가 희귀종을 길러 값비싸게 판매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식물은 가지, 줄기 등 일부를 잘라 다시 심어 기르는 ‘삽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식물계 명품 ‘몬스테라 알보’를 175만 원에 내놓는 판매자가 등장하기도 했다. 일반 몬스테라와 달리 이파리 무늬가 독특해 크기와 상태에 따라 한 줄기에 45만~90만 원대에 판매되지만 번번이 거래 완료되며 인기다.

집안 곳곳 늘어난 반려식물을 일일이 관리하기 어려워지자 중고거래로 되파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백신 접종이 늘면서 외출과 여행이 조금씩 활성화한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경기 수원시에 거주하는 대학생 신모 씨(25)는 1년 가까이 키우던 화분 2개를 지난달 각 1만 원에 중고로 팔았다. 신 씨는 “지난해 비대면 수업이 계속되면서 식물을 사들였지만 여러 개가 쌓이자 관리하는 데 힘이 부쳤다”며 “등교까지 재개하면 식물을 죽일 것 같아 중고로 되팔았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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