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야” 소리에… 전-현직 소방관 2인 ‘한밤중 소방본색’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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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호스 꺼내고, 주민대피 돕고
부산 아파트 화재 큰 피해 막아
경찰, 방화용의자로 집주인 입건

“불이야, 불이야.”

10일 오후 10시 46분경 부산 연제구의 한 아파트. 주민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5층에서 난 불은 이미 검은 연기가 집 밖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번이라 집에서 쉬고 있던 임태준 동래소방서 방호주임(44·소방위)은 옆 동에서 난 불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임 주임이 화재 현장 1층에 도착했을 때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계단으로는 연기가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 계단을 이용해 불이 난 5층까지 단숨에 뛰어올라갔다.

벽면에 있는 소화전에서 호스를 꺼내 집 현관문에 물을 뿌렸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5분간 계속됐다. 임 주임은 “집 안의 뜨거운 열기도 식히고 윗집과 옆집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같은 시간. 임 주임과 같은 동에 사는 이철호 전 동래소방서 소방행정과장(61)은 1층에서 14층까지 오르내리며 주민들의 대피를 돕고 있었다. 소방차가 아파트에 빠르게 들어올 수 있도록 진입도로도 확보했다. 주민 성모 씨(47)는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8층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데 (이 전 과장이) 올라가라고 해서 옥상으로 대피했다”면서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큰 피해가 났을 것”이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불은 1800만 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내고 50분 만에 꺼졌다. 두 전·현직 소방관의 신속하고 침착한 대응으로 큰 피해를 막았다.

2002년 소방관이 된 임 주임은 소방관들에게 화재 진압 전술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지난해 퇴직한 이 전 과장은 40여 년간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 일을 해왔다. 이 전 과장은 “화재 진압의 기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도왔을 것”이라며 겸손해했다.

부산연제경찰서는 방화 용의자로 집주인인 60대 A 씨를 입건했다. A 씨는 현장에서 “내가 불을 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연기를 흡입하고 2도 화상을 입은 A 씨가 병원에서 퇴원하면 구체적인 사고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전현직 소방관#소방본색#주민대피#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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