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기 힘든 트렌드의 굴레[2030세상/김소라]

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입력 2021-10-12 03:00수정 2021-10-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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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얼마 전 ‘용리단길’에 갔다. 용리단길은 신용산역 근처 세련된 가게들이 모인 길이다. 1년 전만 해도 평범한 골목길이었던 곳이 가게 몇 개가 생긴 후 이름을 얻었다. 문을 연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신생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트렌드에 빠른 친구가 정한 장소였다. 도착하니 대기열이 너무 길어 밥을 먹을 수 없었다. 한적한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식당도 6개월 전에는 너무 인기가 많아서 엄두를 못 내던 곳이다. 트렌드의 빠른 변화를 실감했다.

“나도 그렇게 빠른 편은 아냐.” 친구는 자리를 옮긴 식당에서 자기보다 트렌드를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요즘은 새로 생긴 인기 식당에 들어가기 위해 매장 영업시간 전부터 가게 앞에서 기다리는 ‘오픈런’ 풍조가 생겼다. 친구도 나를 만나기 전 이미 어느 신장개업 카페의 오픈런을 하고 왔다고 했다. 그날 유독 피곤해 보였던 이유가 있었다.

30대 중반쯤 되자 내 또래 주변에서 ‘트렌드 은퇴 선언’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유행을 그만 따르겠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콘텐츠 에디터 H는 “이제 (세련됨을 뜻하는) ‘핫’이나 ‘힙’이라는 단어만 봐도 피곤하다”고 했다. 트렌드를 주시하는 게 다 즐겁자고 하는 일이다. 새로운 장소에 앉았을 때, 혹은 갓 출시된 옷이나 신발을 접했을 때 특유의 신나는 마음도 들 수 있다. 그 사이에서 누군가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트렌디하다는 건 최신 정보를 남보다 먼저 아는 소수가 된다는 것이다. ‘남보다 먼저’라는 게 중요하다. 모두가 아는 걸 하면 트렌디한 게 아니니까 남보다 빠르게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트렌디한 생활은 상대적 경쟁이다. 현대 사회 역시 이 경쟁을 부추기는 면이 있다. SNS 때문이다. 오늘 내가 새로운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전시할 수 있다. 그 정보를 접한 사람들 역시 실시간으로 자극받고 행동한다. 뒤처질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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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의 속도가 빨라졌을 뿐 아니라 물량도 늘어났다. 예전에 트렌드를 만들려면 거대 기업 단위의 치밀한 전략과 큰 자본이 필요했다. 각종 채널을 활용해 ‘이게 유행이다’라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트렌드가 될까 말까였다. 이제는 개인 단위에서 수시로 트렌드가 생산된다. 몇십만 팔로어를 거느린 인플루언서가 어느 장소에 한 번 다녀가면 당분간 그곳은 갈 수 없는 곳이 된다. 그런 인플루언서가 한둘이 아니다. 따라가야 할 트렌드가 너무 많아져버렸는데, 순환 주기까지 숨이 찰 정도다.

나도 트렌드의 속도와 양을 따라잡는 걸 포기했다. 마케팅이 직업이니 관심을 끊을 수는 없어도, 사적으로는 유행과 상관없이 마음 편한 곳을 찾는다. ‘힙’과는 거리가 먼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트렌드 포기 선언이 트렌드 아닐까.” 순간 막막해졌다. 현대 사회를 사는 이상 트렌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건 점점 더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트렌드의 굴레#용리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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