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6학년의 충격적인 ‘성희롱 메시지’…교사들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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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0월 11일 06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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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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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담임 교사에 성희롱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사연을 접한 현직 교사들은 “강도가 다를 뿐 교실에서 흔하게 접하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성희롱·성폭력 등의 교권 침해가 발생해도 피해 교사가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직 교사 “욕설·성희롱 학생들 많아…연령대도 낮아져”

지난달 27일 초등학교 교사만 가입할 수 있는 비공개 온라인 커뮤니티에 학생으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는 교사의 사연이 전해졌다. 스스로를 발령 2개월 차 여성 교사라고 밝힌 글쓴이는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으로부터 ‘선생님 XX에 XX 넣어도 돼요?’라는 성희롱 메시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게시글을 접한 교사들은 이 같은 교권 침해가 종종 있는 일이라고 했다. 현직 초등 교사 A씨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강도가 다를 뿐 꽤 흔하게 접하는 일이라 생각했다”며 “평소 교사에 욕설을 하거나 성관계를 했냐고 묻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성희롱 등 교권 침해 행위를 하는 학생들의 연령대가 최근 들어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직 교사 B씨는 “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지인에 따르면 학생들이 여성 교사 치마 속을 촬영한다든가 첫 경험을 물어보는 일이 이전부터 많다고 한다”라며 “이런 행위가 초등학교까지 내려온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 교사의 5분의 2가 젠더 폭력 관련 교권 침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지난 7월14~23일 전국 1130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최근 3년간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여성 교사의 비율은 41.3%, 남성 교사의 비율은 21.3%였다. 특히 응답자 중 20~30대 여성 교사의 66%가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 가해자를 묻는 질문에는 여성 교사의 경우 학생(55.8%)을 지목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어 동료 교사(49.1%), 학교 관리자(24.7%) 순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교육이 늘자, 소셜미디어나 원격수업 프로그램 등을 활용한 교권 침해 행위도 새롭게 나타나는 추세다.

성보란 전교조 경기 여성위원장은 “원격수업 시간에 학생이 익명의 프로필로 접속해 교사에 성희롱 발언을 하거나, 원격수업을 하는 교사를 촬영하고 소셜미디어에 단체로 성희롱 발언을 하는 등의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직 초등 교사 C씨도 “원격수업은 얼굴, 목소리를 녹화·녹음·기록하기 쉬운데 이에 대한 초상권 보호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문제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2차 피해 발생도

현장에서는 이런 교권 침해에 대해 즉각 대응할 체계가 없음을 문제로 꼽는다. 교육부 지침상 교권 침해가 발생해 교사가 교내 담당자나 관리자에 신고하면 학교에서는 교권보호위원회나 성고충심의위원회를 개최해야 한다.

그러나 관리자인 학교장이 위원회 개최를 꺼리거나 피해 교사에게 참고 넘어갈 것을 요구하는 일이 많다. 교사 C씨는 “모든 학교에 기본적인 대처 매뉴얼과 신고 접수 담당자가 있지만 실행으로 이어지기까지 교내 구성원이 눈치를 보고 압박을 받는다”고 전했다.

실제로 전교조에서 실시한 같은 설문조사에서 성폭력·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교사의 59.7%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53%)’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교사니까 참아야 한다는 주변의 시선도 피해 교사의 신고를 저지한다. 교사는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학생을 지도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 교사가 교내 신고 접수나 형사 절차를 진행하려고 하면 오히려 ‘교사가 아무리 그래도 학생·학부모를 고소하냐’, ‘교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 아니냐’라며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교내 교권보호위원회나 성고충심의위원회의 위원들의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해 오히려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손지은 전교조 여성부위원장은 “위원회 같은 자치기구를 운영하는 데에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시간과 지원이 없고 기본적인 매뉴얼만 있기 때문에 업무 담당자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거나 오히려 2차 가해를 저지른다”고 지적했다.

학교 내에서의 압력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의 비협조도 문제의 원인으로 꼽힌다. 성 위원장은 “수사기관에서는 학생의 성희롱 발언에 주어나 목적어가 들어가지 않아서 처벌이 어렵다거나 원격수업 내에서의 익명 발언은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안내한다”고 했다.

이어 “상대가 만 14세 전후 미성년자일 경우 부모를 상대로 고소해야 하고 부모가 학생 관리를 잘못했다는 걸 교사가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피해 교사의 부담이 크다”고도 덧붙였다.

◇“즉각 분리 시스템 도입해야…예방·인권 교육 후속 조치 필요”

현장에서는 교사가 문제 행위에 대해 즉각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족한 현실에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다.

현직 초등교사 D씨는 “성희롱 같은 사안은 물론이고 심각한 수업 방해를 해도 해당 학생을 교실 밖으로 격리할 수 있는 법적 장치와 권한이 전혀 없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징벌이 아닌 상담과 관찰로 문제 행동을 교정하는 게 맞지만 즉각 분리하는 시스템 도입이 현장에서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피해교사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성차별 담화에 대한 사례 연구’의 저자 최건아 청주대학교 교수는 “많은 교사가 개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험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꺼려한다”며 “교사들이 피해 경험을 말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하는데 결국 제도나 구조 차원에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교가 아닌 지역 교육청 차원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전문위원으로 구성된 교권보호위원회, 성고충심의위원회가 갖춰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성 위원장은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아무런 징계 조치가 없다고 하면 더 많은 피해로 이어지고 방관하는 걸 학교 구성원들이 보고 배우기 때문에 교육청 차원에서 확실한 징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2차 가해 예방과 피해 교사에 대한 즉각 보호 및 치유 지원도 대책의 일환으로 제시된다.

이어 “피해 사례가 발생했을 때 학교 구성원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전문가로부터의 성평등 및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이 실시되는 등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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